‘10달러만 좀 보태줄래?’ 트럼프에게서 받은 메시지[광화문에서/유재동]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0-10-20 03:00수정 2020-10-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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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유재동 특파원
“이봐. 나 조(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야.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내 당선을 위해 12달러만 도와줘. 너무 대놓고 얘기해서 미안해.”

“나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대통령의 장남)야. 지금 우리 아버지의 웅장한 연설 듣고 있지? 기부자 명단에 널 올리고 싶은데….”

미국 대선 취재를 위해 얼마 전 양당 캠프에 필자의 전화번호와 e메일 주소를 등록했다. 그 뒤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하루 10여 통씩 받고 있다. 후보들로서는 막판 선거운동을 위해 필요한 일이겠지만 기부를 독촉하는 듯한 메시지를 계속 받다 보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그냥 가만히 놔두고 있다 보니 얼마 전엔 이런 메시지까지 왔다. “대통령이 도와달라고 문자 보냈을 텐데 무시하고 있네. 너 아직 기부 안 했지?”

미국의 선거 문화는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이번에 제대로 깨닫고 있다. 그중 하나는 후보들이 직접 지지자들에게 돈 달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큼지막한 후보 얼굴과 함께 얼마를 기부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1달러라도 기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아예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다. 기부를 이끌어내는 방식도 다양하다. 바이든 캠프의 공식 온라인 숍은 별 특별할 것도 없는 파리채를 후보 이름만 새겨놓고 개당 10달러에 팔고 있다. 최근 부통령 후보 TV토론 때 파리 한 마리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머리에 앉아 화제가 된 걸 모금에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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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이 이처럼 선거자금 마련에 사활을 거는 것은 미국은 신고만 제대로 하면 쓸 수 있는 총액에 사실상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모금과 지출 방식 등을 법에서 일일이 규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 대선은 어느 후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거둬서 쓰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때가 많다. 특히 이런 경향은 팬데믹 속에 치러지는 올해 대선에서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디어와 모바일을 활용한 비대면 선거운동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면서 두 후보의 총선거비용은 이번에 5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4년 전 대선의 두 배에 이른다.

후보들의 이런 가공할 만한 ‘디지털 캠페인’은 유권자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이들의 선거 참여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전체 기부자 중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자의 비중은 22%로 2016년(14%)보다 크게 늘었다. 변변한 유세현장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고 지루한 선거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런 무차별적인 문자 폭탄과 전화 공세가 정치에 대한 짜증과 냉소를 불러일으킨다는 우려도 크다. 트럼프 캠프는 이번 선거에서 총 10억 건의 문자를 발송할 계획이다. 지지자들도 부담스럽게 느낄 정도다.

후보들의 ‘문자 폭탄’은 적어도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어질 태세다. 조금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필자의 이름을 부르며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대통령으로서 난 언제나 널 위해 싸울 거야. 근데 혼자서는 힘들어. 10달러만 어떻게 안 되겠어?”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봐도 그 뜨거운 열기와 절박함을 넘치게 느낄 수 있는 대선이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트럼프#2020 미국대선#미국 선거 문화#디지털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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