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이념편향보다 양극화가 더 위험하다[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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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주류는 다수의견, 보수 소수는 정반대편에
역대 최저 전원일치에 ‘모두를 위한 판결’ 실종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몰려다니는 줄은 몰랐다.”

최근 동아일보 법조팀이 서울대 한규섭 교수 연구팀과 함께 2005년 9월부터 올 9월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274건을 미국 연방대법관 분석 기법으로 조사한 판결 성향을 본 현직 판사들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다.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민유숙 노정희 등 현직 대법관 5명이 전합 판결 38건 중 71.1%인 27건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는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 성향 판사들에게 각각 물었는데, 가장 흥미로워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엑셀 파일로 정리한 분석 전(前) 데이터를 다시 한 번 열어봤다. 분석 결과 현직 중 진보 성향 톱3인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의 동조 현상은 압도적이었다. 세 대법관은 전합 판결의 80%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이를 두 명씩 나눠봤더니 판결 일치 비율이 각각 김선수-박정화는 90.0%, 박정화-김상환은 87.5%, 김선수-김상환은 87.2%였다. 평균적으로 10번 중 9번을 같은 의견을 낸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 이동원 안철상 이기택 노태악 등 대법관 4명은 진보 성향 대법관의 절반 정도인 약 40%의 판결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사회 변화와 국민의 뜻이 사법부 구성에 반영되는 거의 유일한 지점이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과 국회의 인준, 대통령의 임명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집권당과 국회 의석 분포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구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젠더법연구회 출신인 진보 성향 5명의 대법관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박정화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했지만 나머지 4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다양화를 위해 제청권을 행사했다.

5명의 대법관 모두 법원 안팎의 후보 추천 절차를 거쳤고, 현 여당이 절반 미만이었던 국회 본회의에서도 최소 64%, 최대 84%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김명수 코트’ 전반기 3년을 분석하면 부족한 점이 보인다.

무엇보다 지금의 대법원은 양분되어 있다. 현역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분석 대상인 전체 46명의 전합 구성원 중 진보 1∼3위 김영란 전수안 박시환 전 대법관보다 진보 성향이 약하다. 전체 보수 1∼3위인 안대희 김황식 민일영 등 자신만의 법 논리로 중무장한 보수 성향 전 대법관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현직 보수 성향 대법관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과거 대법원들과 비교하면 대법관들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인데도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을,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반대의견이라는 예측 가능한 판결을 하고 있다.

대법원의 양극화는 사회적 울림이 큰 전원일치 전합 판결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적으로 ‘김명수 코트’의 전원일치 전합 판결 비율은 11.1%로 ‘양승태 코트’(33.6%), ‘이용훈 코트’(36.8%)의 3분의 1 이하인 역대 최저 수준이다. 비슷한 성향의 대법관들이 모여 전원일치 전합 판결을 양산한다면 소수의견이 등한시되는 획일적인 사법부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양극단의 대법관들이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고 난상 토론을 한 뒤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만장일치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판결 불복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분석으로만 본다면 김 대법원장은 임기 후반기에 5명의 대법관 후보를 더 제청할 때 김선수보다 더 진보적이고, 노태악보다 더 보수적인 대법관을 뽑아도 된다. 지금 절실한 건 양 진영의 논리를 조정해 ‘국민 모두를 위한 하나의 판결’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대법원#이념편향#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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