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첩보 보고 미루고… 北에 확인 못해서 발표 늦었다는 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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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우리 국민 사살]정부 늑장대응 풀리지 않는 의혹들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47)를 사살한 사건에 대한 청와대와 군의 소극적인 대응을 두고 여전히 의문점이 풀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2일 오후 10시 반 북한군이 이 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군의 첩보가 청와대에 접수된 뒤에도 다음 날 오전 8시 반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은 배경은 물론이고 문 대통령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라”는 지시 이후 다음 날까지 발표가 늦어진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혼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청와대와 정부당국에 따르면 22일 오후 10시 반 청와대로 이 씨 관련 첩보가 도착하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이 참여하는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이들이 청와대에 모인 시간은 두 시간 반이 지난 23일 오전 1시. 각 기관의 감청, 화상 등의 정보를 놓고 신빙성 검증에 나섰지만 1시간 반 만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관계장관회의를 하고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할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

서 장관 등은 23일 오전 7시경에도 다시 한 번 청와대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 시간 반 뒤인 오전 8시 반경 노 실장과 서 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북한군의 이 씨 사살 경위 등에 대해 처음 대면보고를 했다. 하지만 이 보고 이후 문 대통령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로 보고된 군 첩보에 ‘사실관계 확인이 안 된다’는 표현 등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판단이 늦어진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감청 정보 등 ‘시긴트(SIGINT·신호 정보)’뿐만 아니라 시신과 부유물을 불태우는 불꽃을 감시 장비로 확인하고도 군과 청와대가 남북관계 경색 등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첫 대면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이 23일 북한에도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24일 발표까지 하루가 걸렸는지를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지 약 8시간이 지난 당일 오후 4시 35분에야 유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첫 통지문을 보냈다. 청와대는 “북한과의 핫라인이 끊겨 있어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25일 청와대가 북한 통일전선부의 통지문과 9월 중순 남북 정상 간 친서를 공개하면서 ‘핫라인 단절’이란 청와대의 설명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통지문과 남북 정상의 친서가 국가정보원과 통전부 간 핫라인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국정원-통전부 핫라인이 살아있었다면 애초에 군이 이 씨가 북한 등산곶에서 발견됐다는 첩보를 확보한 뒤 이 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될 때까지 약 6시간 동안 군과 국정원 간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야당은 이 씨 사살 첩보가 접수된 22일 오전 10시 반부터 첫 대면보고를 받은 23일 오전 8시 반까지 약 10시간 동안의 행적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대통령의 동선은 공개 일정을 제외하면 보안사항인 만큼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역시 보안사안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공개한 상황에서 당시 행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의혹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종전선언 제안을 담은 유엔 연설문을 왜 수정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청와대는 25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달 주고받은 친서 전문을 공개하면서 친서 교환 이후 종전선언이 포함된 유엔 연설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각했다. 일각에선 북한과의 대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유엔 연설을 수정하는 대신에 사후 보고를 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신규진 기자
#북한#우리 국민 사살#문재인 정부#늑장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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