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배달부서 ‘펩시 제국’ 일군 경영인

이윤태 기자 입력 2020-09-22 03:00수정 2020-09-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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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켄들 전 펩시코 CEO 별세
입사 5년만에 부사장 승진… ‘펩시 챌린지’로 코카콜라 아성 위협
CEO 재직중 매출 38배로 늘려
1974년 소련에 공장, 냉전 완화 기여
코카콜라를 따라잡기 위해 ‘콜라 블라인드 테스트’ 등 다양한 마케팅 기술을 선보이며 현재의 펩시콜라를 일궈내는 데 크게 기여한 도널드 켄들 전 펩시코 최고경영자(CEO·사진)가 19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9세.

1921년 미국 워싱턴주 스큄의 시골 농장에서 태어난 고인은 소젖을 짜고 땅을 개간하는 일을 하며 자랐다. 1947년 펩시코에 입사한 켄들은 영업직에 지원했지만 처음에는 콜라를 만드는 공장에 배치됐다. 배달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다. 영업부로 옮긴 뒤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5년 만에 31세의 나이로 미국 내 영업부문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후 1957년 해외 영업부문 사장을 맡은 그는 6년 동안 펩시를 판매하는 국가 수를 두 배로 늘리며 콜라 시장을 독점하던 코카콜라의 아성을 위협했다.

후발주자였던 펩시는 1963년 켄들이 펩시코 CEO 자리에 오르면서 코카콜라와 ‘콜라 전쟁’을 벌인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광고가 바로 ‘펩시 챌린지’다. 켄들은 브랜드 이름을 가린 채 소비자들에게 어떤 콜라가 더 맛있는지를 묻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도했고, 펩시콜라가 더 맛있다는 응답이 많다는 테스트 결과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또 청량음료의 가장 큰 소비자층인 청년들을 겨냥해 ‘펩시 제너레이션’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 펩시의 새롭고 젊은 이미지를 청년층과 연결시켜 코카콜라와 대비시킨 것.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86년 은퇴한 켄들이 CEO로 재직하는 동안 펩시의 매출은 2억 달러에서 38배인 76억 달러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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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는 미국과 옛 소련의 냉전 시기에 해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켄들은 195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박람회에 펩시 부스를 설치했고, 오랜 친구였던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부통령에게 부탁해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펩시를 시음하도록 했다. 흐루쇼프가 이를 호평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펩시는 1974년 소련에 첫 공장을 열었고, 소련에서 판매된 최초의 미국산 소비재가 됐다. ‘펩시 대사’라고 불린 켄들은 200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친선 훈장도 받았다.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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