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20년만에 대수술
韓 ‘원리금 보장’ 묶여 2% 수익률… 호주는 ‘기금형 도입’ 8%대 고수익
당장 의무화땐 영세사업자 부담… 정부 “실태조사 거쳐 단계적 도입”
정부가 20년 만에 퇴직연금 대수술에 나선 것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낮은 수익률 때문이다. 2024년을 기준으로 퇴직연금의 10년 장기 연평균 수익률은 2.07%에 그친다. 반면 호주 퇴직연금의 최근 10년간 평균 수익률은 8%를 넘는 등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주요국은 수익률이 훨씬 높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대선 당시부터 기금형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정과제에도 포함한 바 있다. 다만 영세, 중소 사업장의 경우 퇴직연금을 의무화할 경우 큰 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여 정부는 실태조사를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 퇴직연금 수익률, 韓 2% vs 濠 8%
노사정이 추진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은 확정기여(DC)형에만 도입된다. 2024년 기준 총적립금의 26.8%를 차지하는 확정기여형은 현재 대부분 계약형으로 근로자가 개별적으로 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해 왔다. 투자 정보가 부족한 탓에 위험이 낮은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에 묶인 경우가 많아 수익률이 낮았다.
호주나 영국처럼 여러 기업의 퇴직연금을 한데 묶어 기금형으로 운용할 경우 전문성을 갖춘 대형 법인이 전략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해결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과 수익률을 함께 높일 수 있다. 호주의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은 기금 절반 이상을 국내외 주식으로 운용하고, 부동산이나 공항, 항만 등 인프라에도 적극 투자한다. 기금형은 한 사업장 안에서도 기존 계약형과 별도로 도입할 수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기금형을 도입하면 지금보다 수익률이 높아질 것”이라며 “근로자의 선택권도 넓히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노사정은 민간 금융회사가 법인을 설립해 다수 사업장의 적립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 개방형, 여러 사용자가 연합해 공동 수탁법인을 만들어 기금을 운용하는 연합형,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처럼 공공기관이 운용하는 공공 개방형 기금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퇴직연금 운용 주체에 제한을 두지 않아 퇴직연금 참여를 주장해 온 국민연금공단에도 사실상 길을 열어줬다.
다만 선언문에는 ‘가입자 이익만을 위해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노동부 관계자는 “퇴직연금을 환율 방어 등 정부 목표에 따라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 영세-중소기업은 단계적 의무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지연 노사정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 발표’에 참석해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26.02.06. 고용노동부 제공기업이 도산하거나 경영이 악화되더라도 퇴직금을 떼이지 않도록 퇴직연금 가입, 즉 퇴직금 사외적립도 의무화된다. 다만 영세, 중소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어 구체적인 시행 시기를 못 박지 않고 먼저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현재 2012년 이후 신설된 사업장은 퇴직연금에 의무 가입해야 하지만 미가입에 따른 과태료나 처벌이 없다. 이에 따라 2024년 기준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은 전체의 26.5%에 불과하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의 도입률은 10.6%에 그친다. 노사정은 중소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30인 이하 중소기업이 가입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은 가입 대상을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으로 퇴직연금 제도의 선택지가 확대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제도 설계와 운영 전반에서 노동자의 실질적 참여와 통제, 대표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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