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법 “국회가 뽑은 위원이 판사 인사 좌우… 법관의 정치화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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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사법개혁안에 “반대” 첫 표명

여당 의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대법원이 위헌이라며 국회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돼 향후 사법부와 입법부의 충돌이 예상된다. 사진은 16일 서울 서초구 법원행정처의 모습.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여당 의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대법원이 위헌이라며 국회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돼 향후 사법부와 입법부의 충돌이 예상된다. 사진은 16일 서울 서초구 법원행정처의 모습.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헌법 해석상 사법행정권은 법관이 행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크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앞으로 보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A4용지 8장 분량의 검토 의견서의 일부 내용이다.

대법원은 의견서를 통해 대법원장 1명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등의 구조적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법원행정처 폐지에는 찬성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를 대체할 사법행정위원회의 권한과 구성 등에 대해서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모두 반대 의견을 냈다.

김명수 대법원장(61·사법연수원 15기)은 개정안에 대해 법원과 법관 독립을 위협하는 위헌적 법안으로 자신이 판사들의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는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사법부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는 조재연 법원행정처장(64·12기)은 주변에 “마지막 법원행정처장이 될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개정안대로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하는 일을 막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 대법원 “비법관이 과반수인 사법행정위는 위헌”

법관 출신의 이탄희 의원이 올 7월 6일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사법행정권 남용을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그 권한을 사법행정위에 위임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사법행정위는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면서 법관 3명, 변호사 4명, 재판제도와 행정 전문가 4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법관이 대법원장을 포함해 4명인 반면 비법관은 2배인 8명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변호사 위원 2명과 전문가 의원 2명 등 총 4명의 비법관 위원을 상임위원으로 두도록 하고 있다. 사법행정위가 재적위원 절반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는 점에서 비법관이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 등에 대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헌법 101조 위반과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침해 등 두 가지 근거로 위헌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헌법 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사법권에는 사법행정권이 당연히 포함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의견이다. 대법원은 “법률상 기구인 사법행정위가 헌법상 기관인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침해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장 권한 대부분을 사법행정위가 그대로 가져가도록 한 점, 사법행정위가 오히려 대법원장에게 권한 일부를 줄 수 있게 한 것은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상임위원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기존의 법원행정처에서 상근 법관에 의해 이루어진 사법행정과 실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어 언제든지 권한의 남용이 가능한 구조”라며 반대했다.

○ “형사재판의 정치화 우려… 법관 과반수 돼야”

국회에 사법행정위원 추천위원회를 설치하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도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리에 따라 사법행정권을 포함한 사법권을 사법부에 부여한 취지에 반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법관이 빠르게 정치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의견서를 통해 “국회가 위원 다수를 선출하는 기관인 사법행정위가 판사의 전보 보직 및 근무 평정까지 결정하면 사법부 독립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 위협받는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영장전담 판사 인사를 정치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대법원은 사법행정의 중심은 법관이라며 해외 사례를 구체적인 근거로 제시했다. 미국은 판사들로만 구성된 연방사법회의에서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일본도 대법원장인 최고재판소 장관이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한다. 외부 인사를 포함한 회의체에서 사법행정권을 다루는 유럽식 사법행정기구에서도 대부분 구성원 과반수는 법관이다. 김 대법원장은 2018년 12월 법관이 다수(법관 6명, 외부 5명)인 ‘사법행정회의’를 법원행정처의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 사법행정위 신설은 여당의 총선 공약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16일 사법행정위원회 신설에 대해 “삼권분립 위배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국회가 먼저 나설 수 없다. 법원이 결정을 내린 뒤 국회에 요청해야 법 개정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조직을 입법부인 국회가 나서서 신설하거나 폐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은 “이번 광복절 집회 허가 등으로 당내에서 법원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김 대법원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했기 때문에 김 대법원장의 판단을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4·15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현행 법관인사위원회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고, 170석 이상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질 경우 언제든 법 개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원행정처 폐지 그 자체가 사법개혁이 아니다. 법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되 적절한 수의 외부 위원이 포함된 법원행정처 대체 회의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고도예·강성휘 기자
#대법원#사법행정권#국회#더불어민주당#법원조직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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