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디지털교도소’[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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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하게도 생겼네’ ‘쓰레기’…. A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쇼핑몰에 올해 7월 이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유를 찾던 A 씨는 ‘디지털교도소’가 자신을 16년 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해 이름과 사진을 공개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강력히 항의하자 사이트 운영자는 “동명이인이었다”며 정보를 지웠다. 하지만 A 씨의 사회적 이미지와 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성범죄자와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사람 등의 개인정보를 공개해 온 개인 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명문대생 B 씨(20)가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B 씨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통하는 이른바 ‘지인 능욕’을 누군가에게 요청했다”며 7월 그의 사진, 학교, 전공, 전화번호까지 상세한 정보를 사이트에 올렸다. B 씨는 대학 커뮤니티에 “모두 사실이 아니며 해킹당한 것 같다. 억울하다”고 해명했지만 악플, 협박에 시달려 왔다.

▷올해 6월 개설된 이 사이트 운영자는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라고 소개문을 올려놨다. 무기징역을 받아도 20년이면 모범수로 석방된다며 신상공개 기간은 30년으로 정했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 등 150여 명이 ‘수감’돼 있고 하루 평균 2만 명이 방문한다.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그의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해 놨다. B 씨를 비롯해 20% 정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었는데도 제보 등을 자체 확인해 의혹을 제기한 경우다.

▷‘디지털교도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촌동생이 n번방 사건’ 피해자란 사실을 알게 돼 복수를 고민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분노할 공간이 필요해 디지털교도소를 열었다”고 했다. 한국의 법체계가 흉악범들에게 충분한 처벌을 하지 못하니 범죄자 신상을 공개해 댓글 등으로 응징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사이버 린치(사적 보복)와 인권 침해 소지가 커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접수됐지만 러시아 도메인(.ru)을 사용하고 운영자도 해외에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돼 수사가 쉽지 않다.

▷이 사이트를 두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한국의 성범죄 처벌 수준에 대한 불만이 투영된 것이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개인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건 법치 사회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죽음까지 부른 사이버 자경단에 의한 피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수사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디지털교도소#죽음#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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