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여성이 겪은 폭력, 왜 여전할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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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연예인 이보나’ 소설가 한정현
일제강점기-독재-민주화 다루며
잊혀졌던 서사, 감각적으로 복원
“성소수자 등 약자들 계속 응시”

한정현 작가는 “오늘 나의 고민이 역사 속 그들의 아픔과 연결돼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정현 작가는 “오늘 나의 고민이 역사 속 그들의 아픔과 연결돼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소설가 한정현(35)의 첫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사진)는 일제강점기와 독재, 민주화운동 등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 속의 잊혀졌던 서사를 감각적 시선으로 오밀조밀하게 복원해낸다. 역사 이야기이면서도 현재를 이야기하고, 소수자들의 서사이면서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를 말한다. 시대를 담아낸 농도 짙은 문장과 응집력 있는 서사가 녹록지 않은데도, 출간 한 달이 안 돼 증쇄할 만큼 반응도 좋다.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문학사를 공부하면서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 성소수자 등에 애정과 관심이 깊어졌다”며 “이들이 경험했던 폭력, 차별이 현재 내가 겪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설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2015년 등단한 작가는 지난해 역사 속 여성 노동자와 성소수자의 삶을 담아낸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속 단편들은 “혈연, 우정, 연애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이 교차하는 연작 소설의 성격”(문학평론가 인아영)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트랜스젠더 무녀에서부터 광복 후 의 여성국극 배우, 민주화운동 시절의 트랜스젠더 대학생, 국가 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미국인, 주한미군과 기지촌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재일조선인 연구자 등 4대에 걸친 계보 속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 편씩 읽어갈수록 시공간을 넘나드는 방대한 이야기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려졌던 여성 혹은 성소수자란 점이다. 그는 “1980년대를 조명한 책에 남았던 여성 노동자의 스트리킹 시위 사진을 보고 그 많은 노동사 가운데 이들의 이야기는 왜 남겨지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며 “지워졌던 이들에 대해 ‘분명히 여기 있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30대 중반 신인 여성작가가 선 굵은 이야기를 빈틈없이 엮어 가는 것은 독특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실 ‘여성 작가들은 사소한 것만 쓴다’는 차별적 발언에 분노가 있었다”며 “얼마든지 소설에서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역사 논문의 메모 형식으로 재일조선인 연구자의 연애사를 쓴 ‘과학하는 마음’이 그런 사례다.

그는 “공부를 할수록 역사 안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사건은 없고 기원은 또 다른 기원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일제강점기, 더 거슬러 조선시대 이야기도 그런 의미에서 나와는 별개의 먼 과거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은 국내 근현대사에 집중됐던 관심사를 시대적으로는 조선시대까지 더 넓히고, 지리적으로는 우리와 유사한 민주화 과정을 거쳤던 대만, 홍콩으로 넓히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존재들을 전부 한 번씩 응시하고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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