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완주 거리 8848㎞… 故 박영석과의 약속 지켜 기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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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수직으로 마라톤은 수평으로 정상과 골인 지점 성취감은 똑같아
이제 300회 완주 목표로 달릴 것”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왼쪽)이 생전 박영석 대장과 함께한 모습.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왼쪽)이 생전 박영석 대장과 함께한 모습.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박)영석아. 네가 다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8848m 고지를 오른다니 난 수평으로 8848km를 달리며 응원할게.”

“형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날 피니시 라인(finish line)에서 기다리다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

히말라야 14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고 박영석 대장은 2006년 중국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횡단 등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 대장의 후원자였던 산악인이자 마스터스 마라토너인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72)은 어떻게 응원할까 고민하다 박 대장 인터넷 응원창에 “8848km를 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전 이사장은 이달 19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210회째 완주하며 8848km를 넘었다. 공식 대회에서 달린 거리만 8860.95km. 그는 “박 대장과 한 약속을 지켜 기쁩니다. 박 대장이 하늘에서 축하해줬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박 대장이 2011년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새 루트 개척에 나섰다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이 전 이사장을 업어주겠다는 약속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 대신 박 대장의 아내 홍경희 씨가 대회에 참석해 “(남편이 생전에) 완주 지점에서 업고 들어온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약속을 못 지켜 대신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하늘에서 남편이 좋아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다”며 이 전 이사장을 축하해줬다.

두 사람의 인연은 박 대장이 1983년 동국대에 입학하고 산악회(동국산악회)에 가입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 이사장은 산악회 회장을 맡아 박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직접 후원하기도 했다. 그는 “학번 차이가 15년이라 함께 등정할 기회는 없었지만 베이스캠프까지 함께 가기도 했고, 박 대장을 늘 응원했다”고 말했다.

평소 조깅을 즐기던 이 전 이사장은 2003년 말 지인을 따라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했다. “산을 같이 다니던 후배가 ‘형님, 저 풀코스 완주했습니다’라고 하기에 ‘그래? 나도 한번 달려볼까’ 하고 시작했다가 마라톤에 빠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30년 넘게 새벽에 달리기, 수영,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몸을 관리하고 있다. 요즘도 평일에는 매일 7∼12km를 달리고, 주말이면 풀코스 마라톤대회에 출전한다.

산 등정과 마라톤은 이행 과정은 다르지만 성취감을 준다는 점에선 같다는 게 이 전 이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산은 수직으로 오르고, 마라톤은 수평으로 달린다. 하지만 산 정상에 올랐을 때와 마라톤 결승선에 도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똑같다”고 말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42.195km 풀코스를 210회째 완주하고 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42.195km 풀코스를 210회째 완주하고 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마라톤에 입문하며 1년에 풀코스를 2, 3회 완주하던 그는 2011년부터 완주 횟수를 크게 늘렸다. 그해만 38회를 완주했다. 2011년 10월 춘천마라톤을 뛰며 풀코스 100회 완주 기록도 세웠다. 안타까운 건 이 기록을 세우기 2주 전 박 대장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그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더 집중했다. 고관절 부상으로 잠시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박 대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5리(42.195km)의 고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영석이는 갔지만 내가 먼저 꺼낸 약속을 저버릴 순 없었다”며 “평소에도 마라톤 풀코스를 꾸준히 달렸지만 인터넷 응원창에 내가 했던 약속을 기억한 친구가 다시 얘기를 꺼내 더 열심히 달렸다”고 덧붙였다.

이 전 이사장은 박 대장의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며 실천하고 있다. 모교 동국대에서 박 대장의 도전정신을 기리는 교양강좌를 하고 있는 그는 마라톤에서도 1%의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주위에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그만해라’라고 한다. 하지만 걸을 수 있으면 달릴 수도 있다. 영석이가 그랬듯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달릴 것이다. 210회로 8848km를 넘겼지만 300회 완주를 향해 달리겠다. 300회를 넘기면 다시 또 다른 목표가 생길 것이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이영균 전 이사장#고 박영석 대장#공원사랑마라톤#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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