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심기보좌’ 강요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 서울시만 그럴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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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피해자가 어제 “시장의 ‘심기보좌’ ‘기쁨조’ 역할을 강요받았다”며 추가로 폭로한 피해 실태는 충격적이다. 샤워를 마친 시장에게 속옷을 가져다주고, 시장의 혈압을 아침저녁으로 재면서 성희롱 발언을 들었으며, “여비서와 함께 뛰면 기록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주말 새벽에 출근해 시장과 함께 마라톤을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이 같은 성추행이 시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4년간 반복되는 일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시장 주변의 공무원들은 피해자에게 ‘왜곡된 성역할’을 강요했고 박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하자 회유와 압박 등 집단적인 은폐까지 시도했다는 것이 피해자 측의 주장이다.

이 같은 폭로 내용의 진위는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제반 정황을 고려할 때 정상적인 조직 내 상하관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져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최근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일탈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더 악화되고 방치돼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광역시도와 기초시군구의 단체장들은 예산 집행권과 막강한 인사권을 쥐고 지역 내에서 제왕적 지위를 누린다. 지방의회마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단체장과 같은 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더구나 각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은 단체장이 가해자일 경우에 대비한 조항이 없다.

여성가족부는 전국의 자치단체를 전수 조사해 피해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왜곡된 성역할을 강요당하거나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막강한 권력에 눌려 피해 사실을 호소조차 못하는 공무원들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지자체마다 직장 내 성폭력 방지 대책을 시행 중이지만 단체장들의 성적 일탈을 방치한다면 조직 내에서, 나아가 민간 영역에서 아무리 성인지 감수성을 외쳐봐야 먹힐 리가 없다.
#박원순 사망#박원순 의혹#미투#성추행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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