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차에… 새벽 도로변 달리던 마라토너 3명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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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파주 종단 울트라마라톤 대회… 새벽 3시30분경 이천 통과중 사고
운전자 혈중알코올 면허취소 수준… “앞에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진술
경찰 “사고때 근처 보호車 없었다… 2008년에도 사고… 안전과실 조사”

경기 이천에서 9일 야간에 국토 종단 울트라마라톤을 뛰던 남성 3명이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시속 100km로 달린 것으로 추정되는 음주 차량은 차도 위를 이동하던 마라토너들을 뒤에서 들이받았다. 경찰은 마라톤 주최 측이 안전 관리에 소홀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경기 이천경찰서는 “이날 오전 3시 30분경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신둔파출소 인근 경충대로 편도 2차로에서 A 씨(30)가 경기 광주 방면으로 몰고 가던 차량이 마라톤대회 참가자 전모 씨(59)와 백모 씨(65), 손모 씨(61)를 추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모두 숨을 거뒀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운전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A 씨는 사고 지점에서 약 3km 떨어진 이천 시내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앞에 사람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현재 A 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입건해 조사하고 있으며,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의 진술과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씨 등은 5일부터 열린 ‘2020 대한민국 종단 537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마라토너들이었다. 주최 기관은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이다. 경찰 측은 “부산 태종대에서 출발해 파주 임진각까지 가는 코스였다고 한다”며 “참가자들은 10일 오후 1시쯤 임진각 종점에 도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참가자 75명 가운데 중간 그룹이었던 이들은 등에 짊어진 배낭에 20cm 정도 되는 막대 모양의 유도등을 매달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대회는 50km마다 설치된 체크포인트에서 안전장비 등을 점검하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고가 난 지점은 코스상 400km 체크포인트인 소정사거리에서 500m가량 떨어져 있다. 대회 참가자들은 오전 3시 반경까지 이 체크포인트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당한 마라토너들은 2차로인 사고 지점에서 인도 쪽 차로를 횡대로 나란히 걷고 있었다고 한다. 대회 운영규정에 따르면 마라톤 참가자들은 기본적으로 인도로 달려야 하지만 인도가 없는 상황에서는 차도 가장자리에서 달리게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도가 아닌 곳으로 갈 때는 주최 측에서 참가자들 뒤편에서 차량 등을 동원해 안전조치를 해줘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연맹 관계자는 “마라톤 전체 코스에 참가자 보호용 차량 5대가 배치됐는데, 사고 당시 피해자들 근처에 차량이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연맹 측도 안전 과실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사고 당시 주변에는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매우 어두웠으며, 3명 외에는 다른 참가자나 행인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도 인근을 지나던 다른 차량 운전자가 119에 오전 3시 34분경 신고했다. 연맹 관계자는 “대회 도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참가자들이 사망해 매우 안타깝다”며 “경찰이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인 만큼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

2008년 ‘한반도횡단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참가자가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온 승용차에 부딪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천=김태성 kts5710@donga.com / 이경진·김소영 기자
#음주운전#마라토너#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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