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됨’[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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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작가
최지은 작가
‘총명한 젊은 여성이 하루 종일 작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 나는 유모차를 밀면서 머릿속으로 시를 썼다.’ ―도리스 레싱 ‘분노와 애정’ 중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할 때까지 적잖이 주저하는 시간을 보냈다. 결혼한 여성의 임무는 당연히 엄마가 되는 것이며, 여성의 삶에 그 이상 행복한 일은 없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나고 자라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 됨’이란 어떤 것일까.

사진작가 모이라 데이비는 서른여덟에 첫아이를 낳은 뒤 위기에 봉착했던 자신에게 ‘생명줄’ 같았던 여성 작가 열여섯 명의 엄마 됨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냈다. 표제작 ‘분노와 애정’에서 페미니스트 시인이자 비평가 에이드리엔 리치는 아이들로 인한 양가감정의 고통에 관해 말한다. “나는 쓰라린 분노와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 더없는 행복에 대한 감사와 애정 사이를 죽을 듯이 오간다.” 수전 그리핀은 아이를 낳고 나서 “말하지 못하는 게 어떤 건지를 배웠다”고 토로한다. 무엇보다 나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돌보는 일이 지루한 노동이었다고 회상하는 도리스 레싱의 문장을 보는 순간, 내가 그 역할을 견딜 수 없을 사람임을 직감했다.

그 대신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여성 열일곱 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썼다. 엄마 됨에 관한 이야기만큼이나 ‘엄마 되지 않음’이라는 주제 역시 다양한 여성의 삶 안에서 복잡한 결을 띠고 있었다. 결혼 15년을 맞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오랫동안 찾고 있던 답과 드디어 만났다. “저는 계속 ‘낳음’에 대해 두리번거렸어요. 하지만 점점 드는 확신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이를 낳음으로써 불행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고, 저기에 행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죠.”

최지은 작가
#엄마#아이 없는 삶#생명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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