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罪… 나의 전쟁은 53년간 계속됐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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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2006년 두만강 넘어 탈출 국군포로
“국군 출신 이유로 北탄광서 멸시
나라 위한 희생 예우하겠다더니 어찌 산 사람을 남겨두는지…”
北에 생존 국군포로 400명 추정


정전협정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힌 지 13일 만이었다.

당시 23세였던 국군수도사단 탱크4중대 소속 이성우 이등중사(현 하사)는 손목에 차고 있던 ‘미제 시계’를 인민군이 쥐고 있던 ‘노동신문’ 몇 장과 몰래 맞바꿨다. 포로 협정 소식이 궁금해서였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선 것도 잠시. “포로수용소에서 신문을 구하는 건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오. 얼마나 기뻤는지. 그런데 그때 운을 다 써버린 것 같단 말이지.”

내일이면 당장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던 조국 땅을 밟은 건 53년 뒤인 2006년. 그의 나이 76세 때였다. 북한에서 그를 끄집어내 준 건 조국도, 미군도 아닌 ‘사람 장사꾼’ 탈북 브로커였다. 76세 노인은 브로커를 따라 맨몸으로 두만강을 건넌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 北 억류 국군 포로 최대 7만 명
북한에서 발굴된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147위가 귀환된 24일, 그들보다 14년 먼저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이성우 옹(90)은 “전쟁에서 안 죽고 살아남은 게 죄라면 죄”라고 했다. 그는 “국군이라는 이유로 북에서 53년 동안 차별과 멸시를 당했다. 6·25는 3년 만에 끝났지만 내 전쟁은 53년 동안 이어졌다”고 했다.


1950년 8월 20세 나이로 입대한 이 옹은 1953년 7월 14일 붙잡혔다. 그가 타고 있던 M36탱크 안으로 중공군이 집어넣은 수류탄이 터지면서 온몸에 파편이 박혔다. 왼손은 엄지와 검지만 남았고 오른 다리는 뼈를 드러낸 채 부러졌다. 지혈을 위해 내의를 벗어 대충 감은 채 광동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정전 후 포로 교환이 이뤄졌지만 그는 북한에 남겨졌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에 따르면 이 옹처럼 송환되지 못하고 북한 및 중국에 억류된 국군 포로는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7만 명에 달한다.

2000년 탈북한 국군 포로 유영복 옹(90)은 “남한 사람들이 ‘왜 포로 교환 때 오지 않고 북한을 택했냐’고들 한다”며 “당시는 우리가 남북을 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 옹은 “정전 전 이승만이 2만 명이 넘는 인민군 포로를 국제법을 어겨가며 석방했고, 그에 대한 반발로 북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은 거지, 우리가 일부러 남은 게 아니다”라고 했다.

○ “시간이 없다”… 생존자 400명 대부분 노령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들은 대부분 탄광으로 끌려갔다. 국군 포로는 탄광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일주일씩 갱도에서 먹고 자며 곡괭이질을 했다. 속옷만 입은 채 까만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서로의 모습을 본 포로들은 서로를 “귀신같다”고 했다. 35년 동안 탄광에서 일한 이 옹은 “사고가 나면 모두 국군 포로 탓이었고 작업량이 부족해도 국군 포로 탓이었다. 누명 쓰고 총살도 부지기수 당했고 사고로도 많이들 죽었다”고 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에서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들은 가장 극심한 차별(extreme discrimination)을 당했다”고 했다.

조국이 불러주길 기다리다 지친 잊혀진 국군 포로들은 결국 제 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1994년 처음 귀환한 고(故) 조창호 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귀환한 국군 포로는 80명이다. 이젠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부분 이 옹과 유 옹처럼 90세를 넘겼다. 실제로 2010년 이후로 귀환한 국군 포로는 없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2014년 기준 국군 포로 400명가량이 아직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 옹은 “이젠 진짜 몇 명 남지 않았을 것이다. 90세 넘은 사람들이 어떻게 나처럼 두만강을 건너겠느냐”며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꼭 찾아서 예우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죽은 사람 소원도 듣고 조국으로 데려오는데 어찌 산 사람을 남겨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성휘 yolo@donga.com·신규진 기자
#6·25 70주년#국군포로#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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