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 왜 증세는 말하지 않나[동아 시론/최한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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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무조건 돈 주는 보편복지
기존 지출 구조조정으론 감당 불능
결국 증세… 스웨덴 수준으로 올려야
與野, 재정대책 책임지고 말해보라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고 주는 돈이다. 기본소득의 정치적 힘은 바로 이러한 간결함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독이 되기도 한다. 기본소득의 보편성과 무조건성 때문에 이를 시행하는 데 매우 큰 비용이 든다. 월 10만 원(연 120만 원)의 기본소득을 위해 대략 60조 원이 필요하다. 2019년 보건복지예산 162조 원으로는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도 감당할 수 없다.

기본소득처럼 정기적인 정부 지출은 빚이 아니라 조세를 통해 조달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재원은 다음의 4가지 방법을 통해 마련될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증세 없이 기존 현금성 복지급여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아동수당, 근로장려금, 생계급여가 대체될 것이다. 이를 통해 월 2만, 3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용돈도 안 된다. 이 같은 증세 없는 기본소득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것이 정작 지원이 더 절실한 빈곤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체되는 복지급여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것인데 이를 똑같이 나누어주면 그 금액이 자신이 과거에 받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증세 없는 기본소득의 피해자는 최빈곤층이 된다. 이들의 ‘빵 먹을 자유’가 훼손되는 것이다.

다음 방법은 지출 구조조정 및 신규 세목 발굴이다. 지출 구조조정은 비단 기본소득뿐 아니라 논란이 있는 대규모 신규 재정사업의 자금 조달 방법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 이는 증세보다 힘들다. 기존 수혜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위한 새로운 세금을 고민해 볼 수 있다. 특히 기본소득의 정수를 ‘공유자산에 대한 배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상속세와 더불어 토지나 데이터에 대한 과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비용이 감당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주장대로 토지분 보유세를 2배 올리거나 네이버와 같은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에 대한 추가 과세로 현재 법인세보다 5%의 세수가 추가로 걷힌다고 해보자.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고작 월 2만, 3만 원 수준의 세수가 확보될 뿐이다. 이는 정치적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공유자산에 대한 과세 세목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기 때문이다. 2018년 국세 294조 원의 77%가 소득, 법인, 소비세다. 상속세나 종부세는 4%도 되지 않는다. 4%의 세금을 몇 배로 늘려야 월 10만 원의 기본소득에 필요한 60조 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결국 남아있는 방법은 기존 세목의 증세뿐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올려야 할까? 2017년 1인당 국내총생산은 약 3262만 원(2만7222달러)이다. 월 10만 원의 기본소득은 이의 3.7%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보다 1인당 조세부담률을 3.7%포인트 올리면 월 10만 원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1인당 월 30만 원(연 3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개인과 법인 모두 지금보다 세금을 50%쯤 더 내야 한다. 이 지사의 구상대로 1인당 월 50만 원(연 6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모두가 세금을 두 배로 더 내야 한다. 결국 ‘의미 있는 수준’의 기본소득은 지출 구조조정이나 ‘부자 증세’로는 안 된다. 중산층과 빈곤층을 포함한 모두를 대상으로, 소득세뿐 아니라 법인세나 소비세를 모두 다 대폭 올려야 가능하다. 물론 더 나은 사회안전망을 위해 증세가 필요할 수 있다. 그것은 국민적 합의의 문제다. 그런데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 도입 시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복지선진국인 스웨덴과 핀란드 수준이 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복지 시스템이 아니라 왜 굳이 기본소득이어야 할까? 이러한 논쟁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가?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대규모 증세는 고용, 투자, 소비 등 경제활동 전반에 큰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이 과연 이러한 비용을 상쇄하는 후생의 증가를 가져다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모든 제도처럼 기본소득 또한 명암이 있다. 기본소득이 강조하는 실질적 자유와 공유자산에 대한 권리의 보장이 기본소득의 ‘밝음’이라면 재정 제약의 여러 문제점은 기본소득의 ‘어두움’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이 두 측면을 균형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왜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논의 없이 대선을 앞두고 오로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지금의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그러한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다. 매우 유감이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기본소득 논쟁#여야 재정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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