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의 실패, 기업에선 누군가 책임을 진다[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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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정책이 길을 잃었다, 방법과 방향 모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기대도 없다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지금도 그렇다고들 하지만 작년 말에도 수도권 골프장은 부킹 대란이었다. ‘노 저팬’ 분위기 때문에 일본 골프여행을 꺼리게 된 수요가 한국으로 몰린 원인이 컸겠지만 재계에선 조만간 있을 임원 인사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지난해 기업 실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그해 연말 대규모 문책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고, 이에 따라 교체 대상이 될 것 같은 임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법인카드를 한 번이라도 더 쓰려고 평소보다 자주 골프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씁쓸하긴 하지만 민간기업의 치열한 성과주의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난주 정부가 스물한 번째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대책 발표를 전후한 최대 관심사는 시장이 안정될지 여부다. 그래서 당분간만이라도 집값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야 한다. 경제 행위가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아닌 기대 인플레이션에 더 영향을 받듯 주택시장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시중에선 “이번에는 돈이 어디로 튈까”를 더 궁금해했다. 특히 암담했던 것은 “이러다 나는 집 살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반응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핀셋 처방’이라며 지역과 대상을 콕 찍어 투기세력을 색출해 낸다고 했지만 이제는 국민 모두를 잠재적 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형국이다. 도무지 당초 의도한 타깃 수혜 계층을 찾기 어려운 이상한 정책이 되고 있다.

이번 대책이 나오기 전 스무 번의 대책이 모두 실패하면서 정책 철학마저 실종돼 버린 듯하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집값을 들쑤셔놨으며, 그 후과로 부동산 시장이 교란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시 정책은 원래 그런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금리 낮춰서 자산시장을 부양하고 이를 통해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해 소비가 늘어나 생산 증가로 이어지면 정책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마저 부정하려면 큰 정부 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야경국가를 선택하길 바란다.

굳이 과거 정권 탓할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시장 개입의 원칙이다. 주택 정책의 목표는 주거 안정이다. 집을 빌려 살든, 사서 살든 큰 걱정 없이 살도록 해주면 된다. 정부가 2년 전 임대사업자를 늘리겠다고 한 것도 그런 취지였을 게다. “안 사는 집은 세를 놓으라”며 임대사업자에게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해 놓고는, 막상 ‘임대사업자=투기꾼’이란 지적이 나오자 이를 대부분 거둬들여 버렸다. 정책이 춤을 췄다.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선 민간임대 시장이라도 늘려야 할 텐데, 정책의 허점 때문에 임대사업자 일부가 제도를 악용해 집 사재기에 나선다면 자가 보유를 늘리는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집 한 채 사겠다는 사람까지도 ‘갭투자자’로 묶어 대출을 제한한다. 주택시장을 셧다운해서라도 거래 자체를 틀어막고 보겠다는 것이다. 이러니 무주택자 사이에선 ‘빚내서 집 사라’라고 할 때가 더 좋았다는 말이 나오고, 청약시장은 정부 공인 로또 투기장이자 현금부자 천국이 됐다. 완벽한 정책 실패이자 그로 인한 시장 실패가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정책이 길을 잃었다. 정부는 매번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지체 없이 강력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스물한 번째다. 그동안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그대로다. 이젠 정부 내에서도 절박함이 안 보인다. 민간기업에서 3년간 프로젝트 스무 개를 말아먹었다면 사표를 썼어도 몇 번은 썼다. 그런 책임감과 반성조차 안 보인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부동산정책#국토교통부#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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