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경고담화 6일만에… 정부, 대북전단 단체 강력제재 나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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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단체 2곳 고발-취소 착수


정부가 10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입장을 바꿔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해 탈북자 단체 2곳을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담화를 내 대북전단을 비난하며 “오물들부터 청소하라”고 요구한 지 엿새 만이자, 북한이 남북 간 통신선을 끊은 지 하루 만에 우리 국민에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다가 급기야 자국민에게 원칙을 바꿔 무리한 법 적용에 나섰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 “사정 변경 있다”며 김여정의 처벌 요구 수용한 통일부
통일부는 이날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큰샘(대표 박정오)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하고, 정부의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앞서 통일부는 4일 김여정이 해당 단체를 비판하며 “제 집안 오물들부터 똑바로 청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하자 4시간여 만에 ‘대북전단 금지법’ 추진을 공식화한 바 있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9일 남북 통신선을 끊고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전환하자 이번에는 하루 만에 해당 단체에 대한 ‘즉각 처벌’ 방침을 밝힌 것이다.

통일부가 교류협력법 중 문제 삼은 조항은 통일부 장관의 반출 승인이 필요하다는 13조 1항. 한 당국자는 “전단 살포나 페트병에 쌀을 담아 살포하는 것들을 (승인이 필요한) 반출 대상에 해당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고 했다. 또 다른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사법 당국이 강력하게 처벌해 주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반출 승인을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정부는 김여정 담화가 나온 4일만 해도 “현행 교류협력법으로는 대북전단을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대북전단을 교역물품으로 판단해 반출 승인 대상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한이 9일 남북 통신선 차단 조치에 나서자 하루 만에 “기존 교류협력법으로도 처벌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 내에서도 실제 처벌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도 함께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법부가 이번 정부의 유권해석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저희(정부) 의견이 처벌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또한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에 대해 정부의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겠다고도 했다. 법인 설립이 취소되면 청산 절차가 진행되고, 잔여 재산 처분 조치 등이 이어진다. 이참에 대북전단 살포 단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 여당에선 대북전단 살포 처벌 법안 내놔
이와 함께 통일부는 또 다른 고발 이유로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에서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에) 합의한 것을 정면으로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은 판문점선언의 효력 논란과 관련해선 “남북 간 준수 의무가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각종 도발로 합의를 어겼는데도 유독 우리 국민에게만 판문점선언 준수를 강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김여정의 담화 영향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관계기관과는 충분히 조율하고 협의했다”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의 사전 협의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통일부 발표가 나온 날에 더불어민주당에선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대북전단을 날리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놨다. 박상혁 의원은 이날 불법 대북전단을 살포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김여정#대북전단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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