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한 사람 무죄, 시킨 사람은 13년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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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강간상황극 유도에 속아 범행 인식 못해… 유죄 근거 부족”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 강간 상황극을 유도하는 글을 올려 실제 성폭행이 벌어지게 한 남성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반면 법원은 이 남성에게 속아 성폭행을 한 다른 남성에겐 당시 범행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용찬)는 4일 A 씨(29)에게 주거침입 강간죄 등을 적용해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5년간 신상정보 공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의 취업을 10년간 제한하도록 했다.

A 씨는 지난해 8월 채팅 앱에 자신을 35세 여성이라고 속인 뒤 ‘강간을 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 B 씨(39)가 관심을 보였고 A 씨는 B 씨에게 다른 여성이 살고 있는 집 주소와 현관문 비밀번호 등을 알려주며 자신의 집인 것처럼 속였다. B 씨는 해당 여성의 집에 들어가 강제로 성폭행했다.

검찰은 A 씨에겐 주거침입 강간 교사 등의 혐의를, B 씨에게는 주거침입 강간 혐의를 적용해 각각 징역 15년과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강간범 역할’을 한 B 씨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모든 증거를 종합할 때 B 씨는 자신의 행위가 강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거나 알고도 용인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 A 씨에게 속아 강간범 역할을 하며 성관계를 한다고만 인식한 것으로 보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반면 A 씨에 대해서는 “피해 여성의 집과 실제 거부 여부 등을 확인하고 현관문 비밀번호 등 관련 정보를 모두 B 씨에게 전달했다. 강간 교사 혐의가 인정된다”고 했다. 두 남성과 피해 여성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의 성격이나 피해 중대성에 비춰 볼 때 법원 판단이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항소심에서 실체에 부합하는 판결이 선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성폭행#랜덤 채팅#강간 상황극#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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