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日, 한국 납득할 때까지 위안부 사죄해야 마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3일 03시 00분


‘포스트 아베’ 이시바 시게루 前자민당 간사장 인터뷰

《 ‘아베 1강(强)’ 체제하의 일본 자민당에서 거의 유일하게 반(反)아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포스트 아베’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0) 전 지방창생상은 이달 3일 헌법기념일을 기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밝힌 개헌구상에 대해서도 정계에서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냈다. “자민당에는 10년간 준비해 2012년에 내놓은 초안이 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 당내에서 하나의 안을 정리하고 국민도 설득해야 한다. 졸속으로는 안 된다.” 아베 개헌안은 현행 헌법 9조 1항(전쟁 포기)과 2항(군대 보유 금지)을 그대로 둔 채 3항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대해 그는 “2항에서 군대 보유를 금지한다고 하면서 3항에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의원을 19일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상은 일본 정계에서도 논리정연한 정책통으로 꼽힌다. 과거 ‘네오콘’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의 군비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대아시아 외교와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함께 ‘포스트 아베’ 주자로 
꼽히는 그는 최근 부쩍 ‘아베 1강’ 체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19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상은 일본 정계에서도 논리정연한 정책통으로 꼽힌다. 과거 ‘네오콘’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의 군비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대아시아 외교와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함께 ‘포스트 아베’ 주자로 꼽히는 그는 최근 부쩍 ‘아베 1강’ 체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19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2012년 자민당 초안은 전문에서 일왕을 ‘국가원수’로 규정하는 등 너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국가원수 안에 대해서는 나도 반대한다. 지금의 덴노(일왕)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포함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아베 총리가 1항, 2항을 그대로 두고 3항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를 뛰어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명색이 헌법인데, 논리적 정합성은 갖춰야 하지 않나. 그는 ‘자신의 손으로 개헌한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 있다.”

―사실 최근의 아베 총리는 너무 무리가 많고 궤변이 두드러진다. 모리토모(森友) 학원 부당 지원 논란에 이어 가케(加計)학원 수의학과 신설 지원 논란 등 본인이 관련된 스캔들이 연달아 터지는 탓인지….

“그를 대표로 선택한 자민당 사람들은 총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지금은 아무도 ‘이상하다’거나 ‘잘못됐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과거 자민당은 내부에 정책과 입장이 다른 파벌들이 있어 견제가 이뤄지고 정책 논쟁이 활발했다. 자민당 1당 체제라 해도 파벌 간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물갈이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민당은 아베 찬성 일색으로 이견이 나오지 않는 폐쇄적 분위기가 강하다. 여기에 더해 관료사회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휘어잡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개헌과 관련해 한국에선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가려 한다는 우려가 크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면 태평양전쟁에 대한 철두철미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1945년 히로시마 원폭과 패전…. 200만 명이 희생됐다. 왜 그 전쟁을 시작했을까. 왜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나. 제대로 검증하고 반성해야 한다. 당시 정부, 육해군 수장들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전쟁에 돌입했다. 당시 언론을 비롯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은 것도 큰 죄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우익들의 공격이 심하던데….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참배했다. 그런데 15년 전쯤 야스쿠니신사의 진짜 뜻을 알고부터는 못 가겠더라. 국민을 속이고 덴노도 속이고 전쟁을 강행했던 A급 전범들의 분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야스쿠니는 갈 수 없다. 덴노가 참배할 수 있게 되면 그때 가려고 한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1975년 11월까지 야스쿠니신사를 8번 참배했으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1978년 이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도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일본회의 등 우익세력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전전(戰前)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나타나는 역사수정주의적 성향들도 이 기반 위에 있다. 같은 보수라 해도 이시바 의원은 이런 점에서 다른 것 같다.

“난 생각이 다르다. 일본은 패전에 대한 철저한 반성 위에 독립주권국가, 민주국가로서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본다.”

―위안부 갈등 등으로 한일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