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민심이 까맣게 타버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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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불나 670여 점포 잿더미… 朴대통령 자주 방문한 상징적 명소
상인들 “하필 이 시국에 화마까지…”

 “내 몸처럼 아끼던 원단이 시커먼 잿더미가 됐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네요.”

 30일 오전 화마(火魔)가 대구 서문시장을 덮쳤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박모 씨(51)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서문시장 4지구에서 20년째 한복 원단을 팔아온 박 씨는 “연말연시를 앞두고 원단을 평소보다 많이 들여놓았다”며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큰불로 대구가 시름에 잠겼다. 시커멓게 타버린 가게 앞에서 상인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릇가게를 운영하는 한 60대 상인은 “11년 전 2지구에 난 화재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또 생기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400년 역사의 서문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점포가 4600여 개에 이르고 상인은 2만 명이 넘는다. 매일 수십만 명의 손님이 찾는다. 올 6월 야시장 개설을 계기로 활기가 더해지던 차에 대형 악재를 만났다. 이번 화재로 4지구 내 점포 670여 개가 전소됐다.

 서문시장은 대구의 민심(民心)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라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는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았고, 많은 상인은 대통령이 방문한 사진을 점포에 걸어놓기도 했다.

 출근길에 서문시장 화재를 목격한 최모 씨(48)는 “대구 출신 대통령이 퇴진을 요구받는 상황까지 겹쳐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박근혜#서문시장#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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