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범은 1주일 뒤에 온대요”… 아흔 노모에 못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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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안좋아 남편만 보냈다가… 형 부부와 함께 떠났는데… ‘관광버스 참사’ 안타까운 사연들

함께 여행간 형제부부 진덕곤 씨(왼쪽) 부부와 진 씨의 형 진성곤 씨(오른쪽) 부부가 이번 중국 장자제
 여행 중 함께 찍은 사진. 사진은 진 씨의 부인 서잠순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유품에서 발견됐다. 이번 사고로 이들 중 덕곤 
씨만 살아남았다. 진덕곤 씨 제공
함께 여행간 형제부부 진덕곤 씨(왼쪽) 부부와 진 씨의 형 진성곤 씨(오른쪽) 부부가 이번 중국 장자제 여행 중 함께 찍은 사진. 사진은 진 씨의 부인 서잠순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유품에서 발견됐다. 이번 사고로 이들 중 덕곤 씨만 살아남았다. 진덕곤 씨 제공
“내 남편 살려 내라. 사람이 아니고 숯검댕이더라….”

 16일 울산 남구 국화원 장례식장. 유전자(DNA) 감식 절차를 통해 남편 성기순 씨(60)의 시신을 뒤늦게 확인한 아내 이정자 씨(60)는 남편의 유품을 어루만지며 울부짖었다.

 13일 경부고속도로 언양 갈림목 관광버스 화재로 사망한 10명의 유족들은 목걸이, 팔찌 등 유품을 확인하고는 차가운 장례식장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유족들은 특히 중국 장자제(張家界)에서 찍은 희생자들의 단체사진이 발견되자 서로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부둥켜안기도 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한화케미칼의 50, 60대 퇴직자들로 부부 동반 여행을 다녀오다 사고를 당했다.

 한화케미칼 1979년 입사 동기 모임 ‘육동회’ 멤버인 성기순 씨는 지난해부터 계획한 장자제 여행에 아내와 함께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무릎 건강이 나빠져 동행할 수 없었다. 이 씨는 “올해 2월 ‘여행에 못 갈 것 같다’고 하니 남편이 얼마나 실망하던지…”라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성 씨는 태어난 직후 아버지를 여의었고 홀로 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자였다. 아내 이 씨는 “아흔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아들이자 남편이었다”고 했다. 이 씨는 시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봐 아직까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남편이 귀국하던 날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이 씨는 “장자제가 너무 좋아서 일주일 더 있다 온다고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품을 확인하던 이 씨는 여행용 가방에 라텍스 매트리스가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무릎이 안 좋은 자신에게 줄 남편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이다. 울음을 참으며 이 씨를 부축하던 딸 효정 씨(22)도 결국 “아버지”라며 오열하고 말았다.

 형 부부와 함께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떠났던 진덕곤 씨(61)는 4명 중 홀로 살아남았다는 슬픔에 고개를 떨궜다. 그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아내, 형 내외와의 중국 여행이 너무 즐거웠다”고 돌이켰다. 진 씨는 육동회 멤버들만으로는 단체 여행이 어려워 추가 모집을 하던 중 아내 서잠순 씨(57)가 “형님 부부와 함께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다같이 여행에 나섰다. 진 씨의 아들 종형 씨(35)는 “평소 두 형제분 내외의 우애가 남달라 자주 여행을 다니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자제 여행 마지막에 안개가 끼어 다 둘러보지도 못했지만 너무 즐거웠다”고 회상한 진 씨는 틈날 때마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내, 형 부부와의 이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부상한 김모 씨(여)는 이날 울산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식을 올렸다. 삼촌과 숙모가 부모님 역할을 대신한 결혼식에서 사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지만 비보(悲報)를 알고 있는 친지들은 내내 눈물을 흘렸다.

울산=정동연 기자 ca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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