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탈퇴’ 족쇄 풀려… 강성 노동운동에 타격 예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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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지회 10여곳 소송 진행중

19일 내려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산업별 노조(산별노조) 중심으로 조직된 국내 노동계가 일대 지각변동을 맞게 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앞으로 산별노조 소속 지부, 지회가 스스로 산별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게 되면서 노동계 전체의 조직력과 교섭력은 물론이고 단체행동권까지 약화될 개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노조가 산별노조에 가입해 지부 또는 지회로 전환되면 탈퇴가 거의 불가능했다. 관련법상 지부와 지회는 ‘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의 한 ‘부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려면 산별노조 지도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국내 산별노조 대부분이 이런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조합원 총회를 통한 집단 탈퇴를 불허하고, 개별 조합원의 탈퇴 역시 지회장 또는 지부장과 위원장 결재를 거치도록 하는 규약을 두고 있다. 개별 부서가 회사 경영자의 허가 없이 회사를 떠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는 경비업무 외주화를 이유로 2010년 2월부터 111일간 파업을 벌였고,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섰다. 장기간 파업에 염증을 느낀 일부 조합원은 별도 모임을 만들어 같은 해 6월 전체 조합원 601명 중 550명이 참석한 총회를 개최한 뒤 97.5%의 찬성으로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발레오전장 노조)로의 전환을 결의했다. 고용노동부와 경북 경주시도 이들의 노조 설립 신고를 수리했다.

다른 지부와 지회까지 ‘탈퇴 러시’가 이어질 것을 염려한 금속노조는 총회 결의 무효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은 금속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발레오전장 지회는 금속노조의 한 지회일 뿐 독립된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지도부 결재 없이 조합원 결의만으로는 탈퇴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금속노조 규약의 법적 효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회와 지부가 산별노조의 한 ‘부서(구성요소)’에 불과하다는 기존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독자 규약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 △단체교섭 독자 진행 △단체협약 체결 능력 등을 갖춘다면 사실상 독립 노조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발레오전장 지회는 조합원 총회와 투표를 거쳐 기업노조로 전환을 의결한 뒤 규약도 마련했다. 여기에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단체협약도 체결했기 때문에 사실상 노조이며, 산별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전환 역시 가능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의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탈퇴하지 못하고 있던 지부, 지회의 탈퇴 결의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민노총 전체 조합원(63만여 명)의 81% 정도가 산별노조 소속이다. 공공운수노조(철도노조 등)와 금속노조(현대자동차 등)는 15만 명을 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 8만 명)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약 5만 명)까지 포함하면 4대 핵심 조직이 모두 산별노조다. 노조의 자주성과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산별노조를 활발히 조직한 결과다. 상대적으로 산별노조 전환이 더뎠던 한국노총도 기업별노조 비율이 53.3%(지난해 기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금속노조나 금융노조(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핵심 조직의 교섭력과 투쟁력이 약화될 개연성이 커졌다.

발레오전장은 “회사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며 대법원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발레오전장은 3000억 원 안팎이었던 매출이 기업노조 설립 후 5000억 원대로 올라섰고, 매년 400억 원대의 흑자까지 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직원의 주인의식이 점점 높아졌고 회사의 신뢰가 쌓이면서 주문량이 크게 늘어난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당장 최대 주주인 프랑스 발레오 그룹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커졌고, 물량 수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협력 업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상신브레이크 노조 등 현재 산별노조 탈퇴 소송을 진행 중인 10여 곳의 승소 가능성도 높아졌다. 전공노와 전교조 지부의 탈퇴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성열 ryu@donga.com·신동진 /경주=장영훈 기자
#산별노조#기업노조#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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