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풀기 속도내는 中-日-유럽… 한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7일 03시 00분


[글로벌 경제 ‘3차 위기’]<下>각국 통화정책으로 긴급 대응

글로벌 경제의 ‘3차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제각각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준비하는 등 위기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역풍에도 추가 통화 완화책을 시사했고, 중국 중앙은행은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를 전후해 연일 수조 원대의 유동성을 시중에 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세계 주요국의 빠른 행보와 달리 한국은 아직까지 큰 정책 방향을 세우지 못한 모습이다.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도 위기에 대한 정면 대응책이라기보다는 가려운 곳을 일부 긁어주는 미시적인 수단이라는 평가가 많다. 평소에 구조개혁을 등한시한 채 금리와 환율, 재정을 동원한 대증(對症) 요법에 의존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 경기 회복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를 노출한 것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주열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밝히며 이 같은 정부의 고민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다만 한국 경제가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 대형 악재로 수출 급락과 내수 침체, 안보 위기라는 전에 없던 3중고(苦)를 겪고 있어 시장에서는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가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다급한 中, ‘정책 여의봉’ 꺼낸다

세계 각국은 마이너스 금리 등 극약 처방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강도 높은 부양책을 구상하고 있다. 비(非)전통적 통화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지만 현 경기 상황에 대한 금융시장의 공포를 잠재우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15, 16일 이틀간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400억 위안(약 7조5000억 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춘제를 앞두고 1월 한 달간 런민은행이 시중에 푼 자금만 250조 원에 이른다.

최근의 금융 혼란과 경착륙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중국 당국자들의 고강도 발언도 쏟아지고 있다. 중국 경제를 이끄는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14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원숭이해가 시작되자마자 각국 증시가 요동치면서 중국 경제가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며 “올해 세계경제 정세가 더 복잡해진 만큼 중국은 ‘여의봉’을 휘두르며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 경제가 합리적 구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면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강한 경기부양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달 중국 수출은 11% 이상 급감해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2014년 6월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유럽중앙은행(ECB)도 다음 달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의 마이너스 금리로 최근 독일 도이체방크 등 주요 대형 은행의 부실 우려가 높아졌지만 오히려 시장에 돈을 더 뿌리는 방식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15일(현지 시간) 유럽의회 연설에서 “금융시장 혼란이나 국제유가 하락이 유로존 안정을 해치는 위험으로 작용한다면 3월 회의에서 주저 없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2일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도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대응할 것”이라며 추가 금융 완화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은 최근 엔화 가치가 치솟고 증시가 폭락한 데 이어 경제성장률도 2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고민 깊어지는 한은… 시장은 금리인하에 베팅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일단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기준금리를 또 내리면 최근의 불안한 시장 분위기를 타고 외국 자본이 급격하게 이탈할 수 있고 12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이주열 총재는 “일본, 유럽, 미국은 기축통화 국가이기 때문에 상식을 뛰어넘는 통화정책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며 “우리는 실질금리 수준이나 통화 증가율, 유동성 상황 등 여러 지표로 볼 때 현재 정책금리가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통화정책만으로는 최근의 저성장, 저물가 기조를 초래한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은행도 한꺼번에 터져 나온 대내외 악재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과거처럼 경기 하강이 확인된 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은 이날 금통위에서도 일부 제기됐다.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으로 하성근 금통위원이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놨다. 금융시장에서도 향후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1.431%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시장은 한은이 ‘백기’를 들고 글로벌 경기부양 모드에 동참할 것이라는 데 베팅한 것이다.

정임수 imsoo@donga.com·박희창 기자
#글로벌 경제#통화정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