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도 10만원짜리 주사… 보험사는 가입자에 부담 넘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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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료 인상 폭탄]

“허리가 문제네요. 이 X선 좀 봐요. 완전히 휘었잖아요.”

지난해 둘째 아이를 출산한 김현정(가명·39) 씨는 손목이 아파 서울 송파구의 한 정형외과 의원을 찾았다. 접수창구 직원은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부터 확인한 뒤 “가입했다”는 답변을 듣자마자 재활 치료를 권했다. 가격은 기본 20회에 240만 원. 망설이는 김 씨에게 병원 측은 “실손보험을 적용하면 환자는 1만, 2만 원만 내면 된다. 그냥 마사지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매달 5만 원이 넘는 실손보험료를 내는데 이렇게라도 혜택을 봐야….’ 김 씨는 카드를 꺼내 긁었다.

○ 값비싼 시술 권하는 사회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뒤 값비싼 치료나 시술을 권하는 곳은 정형외과뿐만 아니라 내과, 피부과 등도 마찬가지다. 워킹맘 이지현(가명·37)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가정의학과 의원에서 이른바 ‘웰빙주사’를 맞는다. 종류도 마늘, 백옥, 신데렐라, 멀티블루, 대사 증강, 태반, 비타민, 칵테일 등 다양하다. 이 씨는 “병원에 감기, 몸살이 있어 주사를 맞으러 왔다고 하면 실손보험으로 커버되도록 알아서 처방해 준다”며 “10만 원짜리 주사여도 내가 내는 돈은 1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보험회사들은 이런 병의원의 과잉 진료 때문에 손해율이 치솟고 있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2014년 보험사들의 평균 손해율은 122.9%에 이르는 상태다. 100만 원의 보험료를 받고 122만9000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험설계사는 “요즘 성인 남성들이 오십견을 이유로 치료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며 “통증의 명확한 원인이 없어도 ‘수영하다 어깨를 다쳤다’는 거짓말로 실손보험금을 받게 처리해 주는 병원이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보험설계사는 “비싸다면 왠지 더 좋아 보이는 게 사람 마음 아니냐”며 “이런 심리를 이용해 일부 병원이 불필요한 검사와 진료를 권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지난달 실손의료보험금을 허위 청구하는 등 보험 사기를 저지른 병원 36곳을 적발했다. 성형수술을 상해나 질병으로 포장해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는가 하면 치료 횟수를 속이거나 병명을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현재 의료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 “병의원 ‘블랙리스트’ 공개하라” 요구도

그러나 줄줄이 보험료를 인상한 보험회사들을 보는 가입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보험을 설계해 판매할 때는 “실비를 모두 보장한다”고 큰소리쳐 놓고는 뒤늦게 개인들에게 그 부담을 떠안기려 한다는 것이다. 3년 전 가입 당시 3만8000원 정도의 보험료를 내던 40대 후반 여성의 경우 올해부터 보험료가 5만 원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보험료는 나이 구간별로 인상률이 다르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학계는 “일부 병의원의 잘못을 전체 문제로 호도해 보험료 인상의 빌미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로 보장 대상을 확대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론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인상으로 4대 보험사의 연간 수익이 2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가입자들은 뿔이 난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과거 보험사가 상품 설계를 잘못했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보험 개발자를 해고한 사례도 있었다”며 “민간 보험사들의 잘못은 국민건강보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 진료를 상습적으로 일삼거나 보험금을 불법 청구토록 하는 병의원의 블랙리스트를 공개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진료 기록 등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는 데다 막상 보험사들도 “병의원을 ‘적’으로 만들면 영업에 지장이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자체 블랙리스트를 확보해 예의 주시하면서 심사에 시간을 많이 쏟고 있지만 보험금 지급이 다소 늦어지는 정도일 뿐 계약 상대방인 고객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 가입자 울리는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전문가들은 ‘과잉 진료→보험금 청구액 증가→보험료 인상→과잉 진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보험업계와 병의원 양쪽 모두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정부 또한 병의원의 과잉 진료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고, 보험회사들의 방만한 운용이나 과잉 경쟁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순천향대 김용하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실손보험료가 오르면 보험제도의 취지에 맞춰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라며 “정부가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시장을 감시하는 한편 병원업계도 스스로 문제를 시정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 민간보험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80%에 이르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굳이 민간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고, 관련된 문제들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영응 홍보부장은 “현재 62%에 머물고 있는 우리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이는 게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정답이라고 본다”며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부과 체계를 개편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이지은·황성호 기자
#감기#보험사#실손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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