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FX 차질에 면죄부 준 대통령 대면보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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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한국형전투기(KFX) 사업 보고를 받고 “계획된 기한 내에 잘 마무리 짓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보고 누락과 핵심 기술 도입 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KFX 사업에 대한 국군통수권자의 발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가한 대응이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KFX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인사들에게 면죄부만 준 셈이 됐다.

방위사업청은 4월 21일 4개 핵심 기술을 이전할 수 없다는 미국의 통보를 받았으나 6월 8일에야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도 대통령에게 3개월이 지난 9월 22일 늑장 보고를 했다. 18조 원이 투입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사업이 표류하는데도 대통령이 5개월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외교안보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렸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 자신이 F-35A로 기종 변경을 최종 결정했기 때문에 사전보고 누락을 질책했지만 문책은 없을 것이라는 뒷말까지 나온다.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4개 핵심 기술의 자체 개발 계획을 낙관적으로 보고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핵심인 AESA 레이더의 경우 필요한 30여 개 기술 중 5개를 이스라엘 영국 스웨덴과 부분 협력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장 청장과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의 대면보고를 받은 뒤 “다행이네요”라고 한 것도 안이해 보인다.

KFX 사업에 대한 불신은 정부 내에서 이미 시작됐다. 기획재정부는 KFX 예산을 670억 원으로 60% 삭감해 국회로 이송했다. 국회 국방위원회도 현재 기술 수준과 개발 가능성 등을 따지겠다며 당초 어제 끝내려던 KFX 예산 심사를 29일까지로 연장했다. 박 대통령이 과연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기한 내 마무리’를 지시했는지 궁금하다.

KFX 사업은 2025년을 목표로 한 장기 프로젝트다. 중국 일본이 5세대 전투기로 무장하는 시점에 한국이 KFX를 개발하지 못하면 대북(對北) 억제력을 포함한 안보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방사청이 만들겠다는 KFX 추진사업단을 직접 관장해 챙기는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KFX 사업을 부실한 상태로 차기 정부에 넘기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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