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위해선 무자비… 경제 아닌 추악한 정치 힘 빌려 공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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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분쟁 ‘엘리엇 헤지펀드’의 실체]
엘리엇 싱어 회장 9년간 추적해온 美팰러스트 記者 국내 첫 인터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4일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짝 공시했다. 삼성그룹은 물론이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선언’이었다. 국민연금과 삼성SDI에 이어 단숨에 삼성물산 3대 주주로 올라선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절차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다. 소액 주주들을 규합하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고 삼성물산을 상대로는 법적 소송도 제기했다. 엘리엇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벌처펀드(Vulture Fund·수익을 위해 상식을 넘어선 공격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투기자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엘리엇의 1인 지배자인 폴 엘리엇 싱어 회장(71)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그리 많지 않다. 오랜 기간 은둔의 투자자로 지냈기 때문이다. 싱어 회장의 개인자산은 얼마나 되고, 어떤 투자철학을 갖고 있기에 세상의 비판을 의식하지 않는 무차별 자본 공세를 펴는 것일까. 현재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은 엘리엇을 9년간 취재해온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그레그 팰러스트(63)다. 25일 뉴욕 맨해튼의 개인사무실에서 국내 언론중 처음으로 그를 만나 싱어 회장과 엘리엇에 대해 들어봤다.》
엘리엇펀드의 지배자로, 2조 원이 넘는 개인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폴 엘리엇 싱어 회장. 세계경제포럼(WEF) 제공
엘리엇펀드의 지배자로, 2조 원이 넘는 개인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폴 엘리엇 싱어 회장. 세계경제포럼(WEF) 제공
―엘리엇펀드가 헤지펀드 가운데서도 벌처펀드로 불리는 이유는 뭔가.

“그는 국가건 기업이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높은 이익을 요구한다. 그의 투자에는 늘 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경제적 계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자연재해(콩고), 정치적 암살(페루), 경제적 혼란(아르헨티나) 등을 이용해 돈을 번다. 추악한 정치의 힘을 빌려 돈을 버는 것이다. 상속 과정에 있는 삼성그룹의 합병에 개입한 것은 어찌 보면 특이한 사례다.”

―싱어 회장이 제3세계 국가들에서 어떻게 돈을 벌었기에 그런가.

“엘리엇펀드는 콩고 페루 아르헨티나 등 위기에 빠진 나라가 발행한 정부 채권을 서방 은행에서 싸게 산다. 액면가가 100원이면 7∼15원에 사는 식이다. 그런 뒤 해당 정부를 상대로 ‘100원을 다 돌려 달라’고 소송을 낸다. 골드만삭스 등 대형 투자은행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소송 결과는 어떤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일본계 이민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재임 시 페루 사례를 보면 엘리엇펀드의 행태가 보인다. 당시 페루 정부의 변호를 담당했던 미국인 변호사 마크 심롯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엘리엇펀드는 부도 위기에 몰린 페루 국채를 2000만 달러어치 샀다. 엘리엇펀드가 ‘원금과 이자를 100% 달라’는 소송을 낸 상황에서 후지모리는 암살 혐의 등으로 처벌을 받을 처지에 몰렸다. 그는 일본으로 도망가려고 전용기까지 준비시켰다. 그러자 싱어 회장은 뉴욕법원에 소송을 내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얻어 냈다. 후지모리는 페루 재무장관에게 전화해 “5800만 달러를 다 줘버려라”고 지시했고 이후 페루를 떠났다.”

―제3세계 국가들이 그의 주요 공격 대상인가.

“미국의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도 공격했다. 그는 놀랍게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자동차부품회사인 델파이를 공격해 1조 원을 챙겼다.”

―미국 산업의 심장인 자동차 산업을 공격했다는 건가.

“2008년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도산 위기에 빠졌다. GM은 자회사인 델파이가 파산하자 소수의 투자자에게 팔았다.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인 존 폴슨과 싱어 회장이 그들이다. 매각 이유는 종업원 3만5000명에게 퇴직 후 주기로 한 연금을 안 주려는 목적이었다.”

―싱어 회장의 수법이 왜 정상적 투자가 아니라 공격으로 불리나.

“정상적 주식 매입이라면 그의 주식 매집 사실이 공개된다. 그는 주식으로 전환 가능한 전환사채를 몰래 사들였다. 그러다가 “우리가 경영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그러곤 델파이의 미국 공장 29곳의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보내려 했다. 당시 GM 사장은 ‘델파이의 부품 공급 없이는 하루 정도만 버틸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싱어 회장은 ‘적정 가격을 줄 테니 되팔라’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곤 120억 달러를 요구했다. GM과 크라이슬러의 핵심 공급자를 싱어 회장의 손에 넘긴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 회생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어떻게 이런 요구가 가능했나.

“싱어 회장은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이용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내길 원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의 자동차 구제 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던 스티브 래트너는 “정부를 상대로 인질(델파이) 몸값을 요구하는 거냐”라고 싱어 회장을 비판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자동차 산업 회생에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명운이 걸렸던 거다. 싱어 회장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회사를 청산하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결국 어떻게 결론이 났나.

“싱어 회장은 델파이 공장 29곳 가운데 6개를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5개는 GM에 되팔았다. 대부분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겼다. 일자리 3만5000개가 중국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부가 행정력을 발동할 수는 없었나.

“2009년 취임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막강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파산법원으로 끌고 가 상식에 기반을 둔 판단을 받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국 언론은 지적하지 않았나.


“공교롭게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보수적 논조의 월스트리트저널만이 비판적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델파이가 모욕을 당했다. 엘리엇펀드가 GM을 제3세계 국가를 다루듯 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다른 매체는 조용했다. 최근엔 머독이 소유한 뉴욕포스트가 싱어 회장 전문 취재기자를 두고 보도하고 있다.”

―싱어 회장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공화당의 주요 후원자다. 비판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는 가혹한 경영자다. 그래서 벌처펀드 아니냐. 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망하건 말건 개의치 않을 사람이다. 죽음을 앞둔 미국 석면노동자의 궁핍한 처지를 압박해 보상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그를 탐욕적 인물로 묘사했지만 그는 ‘재산의 50% 이상을 기부한다’고 서약까지 하지 않았나.

“그의 돈이 어디로 가겠는가. 공화당이나 억만장자의 이익을 유지하는 데 쓰이지 않을까.”

―그가 그토록 특별한 인물인가.

“그는 벌처펀드 분야에서 단연 1인자다. 여러 명 가운데 한 명이 아니다. 그는 공화당 지원 정치자금 모금단체 ‘미래회복(restore the future)’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움직이면 다른 억만장자들이 따라오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도 최근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 동성애자 권리를 위한 최대 후원자가 될 정도로 진보 이념을 위해서도 돈을 쓰고 있다.”
―왜 갑자기 달라졌나.

“표면적으론 그의 아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내 좌파와 민주당에 우호적인 분위기도 만들어야 했을 거다. 미국 케이블뉴스 채널 중 가장 진보적 성향을 가진 곳이 MSNBC다. 하지만 MSNBC조차 싱어 회장을 절대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막강한 싱어 회장이 삼성 합병에 반대하고 나섰다.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것일까.

“나는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그의 과거 행적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를 활용해 돈을 버는 천재다. 델파이뿐만 아니라 페루와 콩고 사례에서도 그랬다. 같은 이유에서 삼성물산 지분 확보도 경제적 논리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제3세계 기업도 아니고, 미국 자동차 산업처럼 파산 위기도 아니다.


“한국적 기업문화에서는 노조도 허용하고, 고학력에 훈련이 잘된 노동자에게 월급도 많이 준다. 어찌 보면 한국식 사회계약인 셈이다. 왜 LG가 세탁기를 인도네시아나 멕시코가 아니라 한국에서 만드나. 우리 사무실에도 삼성TV가 있지만 마찬가지다. 한국식 기업문화에선 기꺼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면서라도 한국 내 고용을 유지하려고 한다. 싱어 회장과 엘리엇펀드는 창조적 파괴를 믿는다. 주주 이익과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한국식 경영 관행을 깨뜨린다면 가치가 생긴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들이 개입해서 삼성 측이 어떻게든 ‘특별한 보상’을 내놓도록 만들고 싶을 것으로 나는 추측하고 있다.”

―당신이 취재해 온 싱어 회장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

“그는 자신을 ‘시장경제의 슈퍼맨’으로 여긴다. 그는 ‘내가 제일 똑똑해’라고 믿는다. 나도 동의한다. 그는 특별한 탁월함을 갖고 있는 동시에 도덕 가치와 무관한(supremely brilliant and amoral) 사람이다. 부도덕(immoral)한 게 아니라 아예 도덕 개념과 동떨어졌다는 뜻이다. 그가 불법행위를 저질러 조사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싱어 회장은 자신을 시장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철학자로 생각한다. 극단적 시장주의를 주창하는 맨해튼 인스티튜트 대표로 활동하면서 철학왕(philosopher king)을 꿈꾸고 있을 거다. 그는 이제 무대 막후에서 벗어나 무대 위로 오르려 하고 있다. 막후에서 공포의 대상이 됐던 점을 즐겼지만 언제부턴가 사상가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계경제포럼(WEF) 패널 토론에 가끔 등장한다.

엘리엇은 아마 한국 기업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업지배 구조를 만들 기회’라고 말할 것으로 짐작된다. 콩고나 페루를 공격할 때도 그곳에 부패한 정치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타인으로부터 존경 받기를 원한다는 건가.

“그렇다고 본다. 똑같은 헤지펀드 경영자지만 조지 소로스는 존경을 받고 있다. 독재국가에 민주주의를 불어넣기 위한 투자가 병행되기 때문이다. 싱어 회장은 아마도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겐 존경이 따라올 만한 투자 프로젝트가 없었다. 나는 순전히 욕심에서 비롯된 투자라고 믿는다. 오래 그를 관찰하고 공부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직접 그를 만나 취재해봤나.

“그의 맨해튼 저택에 찾아가 봤지만 절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홍보담당자는 나에게 ‘당신은 절대 그를 못 만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영국 BBC가 나와 함께 그를 비판적으로 다룬 방송물을 만들면서 반론 기회를 줄 테니 취재에 응하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는 이런 보도가 나가면 대체로 조작됐다거나 거짓말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다. 어차피 어떤 투자건 투자는 그에겐 소액이다. 그 돈을 잃는 게 두렵지 않을 거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그의 삼성물산 주식 매집을 통한 합병 반대도 장기적으로 갈 공산이 크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랬다. 그는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소송을 걸 것이다. 부패한 제3세계 정부만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게 아니다.”

―다른 소송 상대가 누구였나.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UBS증권과도 법정에서 싸웠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나에게는 내 이익을 지킬 최우선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오바마 대통령과 UBS 미국본부 대표가 골프를 함께 쳤다. 나는 그때 엘리엇펀드의 소송 걸기도 논의됐을 것으로 짐작한다. 백악관에서 만나면 대통령 대화는 모두 녹음된다. 하지만 골프카트에서라면 비밀 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비난을 받으면서도 골프를 자주 치는 게 이런 이유 아닐까.”

―싱어 회장의 사생활은 어떤가.

“그의 개인 재산은 2조 원이 넘는다. 개인 제트기를 갖고 있으며 맨해튼에는 최고급 빌라, 콜로라도 주 애스펀에는 70개의 방이 딸린 빌라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공식 석상 노출을 꺼린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그의 사진은 3, 4개밖에 안 나온다. 대체로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토론장 모습뿐이다. 사교 파티에는 가지 않는다. 그만큼 그가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뜻이다.”

한편 국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엘리엇의 공세는 지배구조가 취약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계 헤지펀드의 총공세 신호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은 누구? ▼
재산 2조원 유대계 미국인-공화당 최대 개인 기부자


유대계 미국인 억만장자로 헤지펀드 엘리엇 어소시에이츠 경영자다. 정치운동가이자 기부활동가로도 알려져 있다. 로체스터대를 거쳐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했다. 투자은행에서 부동산 업무를 하다가 1977년 130만 달러로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38년 동안 2년만 손실을 봤고, 36년 동안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균 수익률은 14%. 개인 재산은 2조 원으로 추정된다. 은둔해 오다가 최근 세계경제포럼(WEF) 등에 연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공화당의 최대 개인 기부자이다. 피아노 연주가 취미다.


▼ 그레그 팰러스트는 누구? ▼
‘벌처의 피크닉’ 집필한 美탐사보도 전문기자

벌처펀드를 취재해온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그레그 팰러스트(왼쪽)가 25일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벌처펀드를 취재해온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그레그 팰러스트(왼쪽)가 25일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탐사보도 기자. 헤지펀드의 전횡, 에너지 재벌의 비밀주의와 환경 파괴를 주로 취재했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학부)과 경영학(대학원)을 공부한 뒤 미국 정부에서 일하다가 만연한 대기업, 금융기관, 정치인의 불법행위를 목격하고 탐사 저널리즘에 나섰다.

저작 ‘벌처의 피크닉’은 한국어를 포함해 2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올 6월 글로벌 편집자 네트워크가 수여하는 탐사보도 분야 데이터 저널리즘상을 받았다. 늘 중절모자를 쓰고 다닌다.

뉴욕=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부형권 특파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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