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직접 나선 순방 성과 브리핑
주요 정상들과의 ‘속닥한’ 뒷얘기도 소개
친분으로 국가 현안 풀어내는 데는 한계
외교 무시 말고 현장·실무자에 힘 실어야
이정은 부국장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유럽 순방 후 진행한 브리핑은 정보의 점성이 달랐다. 레오 14세 교황과의 방북 논의부터 주요 7개국(G7) 지도자들과 나눈 ‘속닥한’ 내용까지 정상외교의 앞뒷면을 보여주는 여러 스토리가 담겼다. 외교안보 당국자나 참모가 걸러서 전하는 형식이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내용들이다. 90분 넘게 이어진 브리핑 내내 차렷 자세로 옆에 서 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게는 한 차례도 답변 기회가 넘어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해외 순방 결과 브리핑에 나선 데에는 국내 정치적 이유들도 있었음을 본인 스스로 밝혔다. ‘폭락’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인정한 지지율 하락이나 당청 갈등을 해외 순방의 성과로 만회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대형 국가사업 수주 발표 같은 건 없었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이어 11일 만에 다시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렇더라도 글로벌 논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했다고 본다.
눈길이 갔던 부분은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케미였다. 만찬 테이블에서 이 대통령과 붙어 앉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관심, 북한의 핵 보유를 사전에 막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그의 속내를 확인하면서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비롯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도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셀카 사진을 찍었고, 그가 서명용으로 쓰는 펜을 선물받았다. 부부 골프 약속을 했다는 내용도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지난해 8월 워싱턴에서 열린 두 정상의 첫 정상회담 때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인신공격이나 공개 면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던 당시 그의 친근함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이어 이번 G7 계기 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 ‘돈 버는 기계’ 등으로 폄하해 온 것과는 별개로 이 대통령에게는 일관되게 호감을 표시한 것이다.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정상외교의 힘은 막강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처럼 정책 지시가 톱다운으로 내리꽂히는 시스템에서는 추진 속도와 효율성을 배가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트럼프 한 명을 움직여 이란전에 미국을 참전시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록 전쟁 100여 일 만에 양국 관계가 더 꼬여 버리긴 했어도 이스라엘은 60조 원이 넘는 미국의 전쟁 비용을 끌어 쓰며 이란의 군사력 붕괴라는 초기 목적을 순식간에 달성했다.
다만 정상 간의 친분이 모든 외교 난제를 해결하는 치트키는 될 수 없다. 한미 관계만 해도 관세 전쟁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번엔 전시작전권 전환 등을 놓고 국방 쪽에서 갈등 조짐이 심상치 않다. 미국이 테크기업 규제와 엮어 한국을 압박해 온 쿠팡의 정보 유출 대응 건은 여전히 뇌관이고, 이란 재건 펀드 동참을 비롯한 ‘전쟁 설거지’ 압박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 대통령을 향한 워싱턴 일각의 친중(親中) 공세 속에 한국 통신회사가 중국과 연계됐다는 의심 때문에 앤스로픽 인공지능(AI) 모델 접속이 차단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런 문제가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을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을 조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리스크들을 관리하며 협의 이행을 끌고 가는 건 결국 실무자와 현장이다. 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거창한 정상 간의 약속도 뒷심을 잃는다. 정상회담에서 전격 발표를 해놓고도 6개월 넘게 교착 상태였던 핵잠 후속 논의는 외교부에서 뚫었다. 앨리슨 후커 국무부 차관과 20년 인연을 다져 온 고위 당국자가 직접 연락한 소통 과정이 주효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경험과 네트워크가 축적돼 있는 외교 전문가들의 역량이 제대로 쓰여야 한다.
이 대통령이 이번 순방 기간에 내놓은 발언 중엔 해외 공관을 ‘동네 주민자치센터’에 비유한 것도 있었다. 교민들을 친절하게 응대하라는 취지였다고 해도 이 메시지 한 줄에 어깨가 처져 버린 외교관들이 많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외교 업무 경력이 없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지인들이 특임공관장으로 임명되는 인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는 시점이다.
정상 간 케미가 폭발하는 외교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뒤에서 이를 받치는 사람들이 실력을 발휘해야 제대로 켜진다. 이 기본을 무시하면 이 대통령이 앞으로 브리핑에서 내놓을 순방 성과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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