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기문 퇴박한 北 김정은의 변덕, 남북관계 상수로 봐야

  • 동아일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개성공단 방문을 발표한 지 하루도 안 돼 북한이 방북 허용을 전격 취소한 것은 북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비정상적인 체제인지를 다시 일깨워준다. 반 총장은 어제 오전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축사에 앞서 “오늘 새벽 북측이 갑작스럽게 외교 경로를 통해 저의 개성공단 방문 허가 결정을 철회한다고 알려왔다”며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직설적으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할 만큼 북의 일방적인 결정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반 총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방북을 추진했지만 뜻하지 않게 체면을 구기게 됐다. 유엔 주변에선 ‘너무 나이브(순진)했다’는 얘기도 나돈다니 안타깝다. 북이 사전에 유엔 채널을 통해 조율까지 마친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돌연 취소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반 총장이 북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배라고 지적한 데 대한 불만일 수도 있고,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압박 강화를 시사한 데 발끈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북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유엔 사무총장을 우롱하는 변덕스러운 결정을 내려도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의미다. 핵심 인사도 잔혹하게 처형하는 것을 지켜본 측근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감히 입이나 뻥긋하겠는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김정은의 행동을 독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아 팽창(ego inflation)’이라고 진단하는 임상심리학자도 있다. 스스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통제도 안 돼 자폭적 행동도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렇게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을 상수(常數)로 놓고 대북정책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북한과 어떻게 ‘통일대박’을 이룰 것인지 총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김정은의 북한’이 김정일의 북한과도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어제도 북 국방위원회가 유엔 안보리를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라고 비난하며 자신들의 핵 타격 수단이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반 총장을 퇴박해 국제사회에서 평판이 더 나빠지고 북의 고립이 심화되면 도발로 국면 전환을 꾀할 수도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