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근혜 대통령, 對국민 사과는 왜 건너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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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을 보고받은 뒤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관련된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 박 대통령은 여야 가릴 것 없는 정치권 전체의 적폐라고 여기고 있으며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 전체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순방 전날인 15일 세월호 현안점검회의 때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의 선후가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검찰은 어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최측근인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현재 검찰 수사는 이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집중되고 있다. 성 회장의 메모에 나온 8명 중 대부분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경선자금’으로 7억 원을 받았다는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외에 대통령선거 때 2억∼3억 원을 받았다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대선 때 조직·자금을 다루는 자리에 있었다. 야당은 당장 이 총리와 홍 지사는 ‘곁가지’에 불과하다며 박 대통령과 직결된 대선자금과 경선자금을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성 회장 간에 지난해 40여 차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도 140여 차례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기록이 나왔다. 김 전 실장은 의혹이 불거지자 “일말의 근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허위”라고 부인하면서 “비서실장이 된 다음에는 성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과 2013년 11월 6일 만찬을 했다는 성 회장의 일정표가 공개되자 그는 “충청도 의원 5명과 저녁을 먹었다”고 말을 바꿨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고 말했다. 국민의 고뇌를 헤아리기에 앞서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총리부터 챙기는 것은 올바른 순서가 아니다. 이번 의혹은 박 대통령이 치렀던 선거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니 ‘유체 이탈 화법’이란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15일 검찰 수사에 대해 언급할 때도 자신의 대선 및 경선 자금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지 않았다. 제 살을 깎는 차원에서 자신의 측근과 관련된 사항을 먼저 수사하라고 검찰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성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야권 인사에 대한 수사는 그 다음이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대해 아예 보고를 받지 말아야 한다. 검찰 수사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중남미#박근혜#이완구#사의 표명#성완종 게이트#박준호#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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