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대통령 측에 돈 줬다”는 성완종 폭로, 진실 밝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0시 00분


코멘트
해외 자원개발 비리 혐의 속에 목숨을 끊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옷에서 ‘로비 리스트’로 의심되는 여권 중진 인사의 이름이 나왔다. 김기춘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경남도지사, 부산시장(서병수) 등 6명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메모지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의 이름도 적혀 있었으나 금액 표시는 없었다. 이에 앞서 성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김기춘, 허태열 씨에게 억대의 돈을 준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 선언으로 시작된 검찰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가 예기치 못한 부메랑이 돼 정치권에 메가톤급 태풍을 예고하는 상황이다.

경향신문 보도와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성 회장은 2006년 9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독일을 방문할 때 수행했던 김기춘 의원에게 10만 달러(약 1억 원)를 건넸다고 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이던 허태열 의원에게는 경선 자금으로 3, 4차례에 걸쳐 7억 원을 줬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성 회장은 영장실질심사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주장하는가 하면 여권 인사들에게 구명 전화를 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내가 죽으면 혼자 죽을 것 같으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가 김기춘, 허태열 씨를 콕 집어 돈을 줬다고 밝힌 것이나, 핵심 친박계인 인사들의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간직하고 숨진 것은 도움이 절실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한 데 대한 야속함과 항의의 표시일 것이다.

성 회장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과 끈끈한 관계를 두루 유지한 ‘정치형 기업인’이었다.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돼 기소됐다가 노무현 정부 때 두 번 특별사면을 받은 적도 있다. 이 때문에 특별사면에도 금품 로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경찰은 시신 발견 당시 메모지를 찾아내고도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다. 성 회장의 폭로 보도가 없었다면 메모지 속의 리스트가 ‘은폐’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 회장은 세상에 없지만 악취가 진동하는 구체적 폭로가 나온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김기춘, 허태열 씨의 경우는 돈을 전달했다는 시기와 장소, 방법이 구체적인 데다 상식적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거명된 모든 사람이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해 현재로선 폭로가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상태다.

돈의 성격을 정치자금으로 본다면 2007년 12월 법 개정 이전의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는 5년(지금은 7년) 공소시효가 끝났다. 김기춘, 허태열 씨의 경우 성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처벌할 수 없어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 쉽지 않다. 메모지에는 이름과 액수만 적혀 있을 뿐 구체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중에는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아 수사가 가능한 것도 있을 것이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해도 김기춘, 허태열 씨가 자신들과 관련한 보도를 한 경향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줄 수는 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재임 시 청와대는 유출된 청와대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두 사람이 정말 떳떳하다면 소송을 통해 진실을 가림으로써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성 회장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 그리고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검은돈’을 받은 것이 되기에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설사 박 대통령이 몰랐다고 해도 도의적 책임까지 피해 가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이와 관련해 국민 앞에 상세히 소명을 할 필요가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