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시사讀說]정치인 2세 ‘얼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57)는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로 아버지처럼 대구를 기반으로 한 의원이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50)는 경기 수원에서 아버지 남평우 전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김세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43)은 부산에서 아버지 김진재 전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부자를 합치면 각각 국회의원 5선, 7선, 7선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아버지들이 모두 보수 정당에 속했고 아들들도 그 계보를 잇는 보수 정당 소속이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고 자신의 노력보다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더 들자면 지금 보수 정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은 국회선진화법 처리에 앞장섰다. 유 원내대표는 김영란법 처리에 앞장섰다.

집안의 실용적 정서가 중도로

나는 이들의 중도 성향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정치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운 오랜 경험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중도적인 아들의 차이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보수든, 중도든, 무엇이든 시대의 대세를 좇아 선거에서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정치가 집안 특유의 실용적 정서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시대는 중도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중도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도는 원칙 없는 중도여서는 안 된다. 국회선진화법 식의 합의 정치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영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거릿 대처 총리 이전까지를 합의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때의 합의는 여야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한 것이지 다수결의 원칙을 저버리고 한 것이 아니다.

김영란법은 꼭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민간 언론인을 공직자처럼 취급한 김영란법은, 그 법의 국회 통과 직후 1주일간 해외에 나가 자기 발언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돌아온 김영란 씨가 뭐라고 말했든 위헌이다. 언론인은 김영란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은 야당의 법사위원장이 위헌을 외치는데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처리해 버리는 그 행태다.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라는 말이 있다. 흔히 ‘기성체제’로 번역되는 이 말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쪽의 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하는 세력이 교묘히 결합해 하나의 기득권을 형성하는 상황을 표현한다.

기득권 지키는 중도 안 된다

법안 처리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국회선진화법은 정치에서 이스태블리시먼트의 형성을 뜻한다. 이 체제에서는 치열하게 싸워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2등이 돼도 밀려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버지 대부터 지켜야 할 기득권이 있는 정치인 2세들이 원하는 체제다. 사회가 대립하며 크게 흔들리는 것은 이들의 기득권 유지를 불안하게 할 뿐이다. 이것이 이들이 의식하든 않든 중도를 지향하는 이유다. 그런 체제를 만들 수 있다면 다수결의 원칙을 허물어도, 공적-사적 영역의 구별 같은 건 무시해 버려도 상관없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비서관들을 ‘얼라들’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시류에 편승해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정치인 2세들이야말로 우리 정치를 망칠 ‘얼라들’이다. 중도는 원칙을 무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되 그것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보여 줄 때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