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허진석]2000년 전 사랑의 낙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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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채널A 차장
허진석 채널A 차장
‘우리는 꿈에 부풀어 왔고, 이제는 떠나려 한다. 그런데 저 여인이 우리를 떠나기 힘들게 하네.’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쯤부터 뿜어져 나온 화산재로 로마제국의 화려했던 도시 폼페이는 이런 낙서까지 품은 채 인류의 ‘타임캡슐’이 됐다. 당시 사용하던 수도관과 화덕에서 구워지던 빵까지 볼 수 있어서인지, 사랑에 흔들리는 사내들의 마음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전’ 얘기다.

서기 79년이면 낙랑의 공주가 고구려 호동 왕자와 사랑에 빠져 자국의 자명고를 찢은 조금 뒤다. 폼페이 같은 유적은 없지만 인간의 본성이 한반도라고 다르겠는가.

고려가요를 ‘남녀가 서로를 즐거워하는 노래(男女相悅之詞·남녀상열지사)’로 부르며 금기시하던 조선에서조차 그 본성은 삐쭉삐쭉 삐져나와 있다. 어느 부인이 지었다고 알려진 시(詩) 하나.

‘마음이 있어 두 가슴 붙였고/정이 많아 두 다리를 열었다오/움직이고 흔드는 것은 내게 달렸지만/깊고 얕음은 그대하기에 달렸다오’

조선 중기 문인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실린 이 시의 제목은 ‘가위’다. 제목을 알고 난 후 읽으면 ‘시어가 교묘하지만 외설스럽다’한 이수광의 평가에 절로 주억거리게 된다.

기녀 시인은 감정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황진이가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 두었다가, 정든 님이 오신 그날 밤에 붙여 쓰겠노라’고 노래한 시조에는 시간을 마름질하면서까지 임과 오래 있고픈 마음이 절절하다.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다 보면 본성의 차이로 남자가 거칠어지는 경우가 있다. 조선 선조 때 기생이자 여류시인이었던 이매창은 그런 때의 심정을 이리 읊었다.

‘민망해 팔을 빼니 그 서슬에 적삼이 찍어지고 만다. 찢어진 옷이야 다시 꿰매면 된다지만 찢긴 마음이야 어이 다시 꿰매리. 사랑하는 마음마저 덩달아 끊어질까 두렵다.’(정민 한양대 교수 ‘우리 한시 삼백수-5언절구 편’ 중에서)

유구한 남녀 간의 사랑이지만 2000년 전과는 달라진 게 있다. 과학이 그 사랑의 근저까지 들여다본 것이다. 사랑이란 호르몬의 작용이며 그 유효 기간은 1∼3년 정도라는 것, 그리고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문학에선 사랑의 뿌리를 이처럼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랑의 뿌리가 밝혀졌다고 한들 예술과 문학에서 사랑의 지위가 바뀔 수 없고, 바뀌어서도 안 된다. 마치 우리가 밥의 성분을 알았다고 해서 밥의 가치를 낮춰 보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랑에 ‘취하는’ 이유를 알고 있으니, 지금의 청춘들은 2000년 전보다 좀 더 깊고 성숙한 사랑을 할 기회를 가진 셈이다. 영원할 것 같은 그 감정에도 끝은 반드시 있나니, 보다 신중하시라. 뜨거운 연말을 보낼 청춘들께, 행운을 빈다.

허진석 채널A 차장 jameshuh@donga.com
#낙서#연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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