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청구서 스캔… “안전하게 결제됐습니다”

동아일보 입력 2014-11-04 03:00수정 2014-11-04 07:5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핀테크’ 금융혁명이 온다]<1> 현실이 된 미래 금융
영국과 크로아티아에 본사를 둔 핀테크 기업 마이크로블링크의 포토페이(photopay) 서비스. 앱으로 영수증 사진을 촬영하면 계좌번호, 금액 등이 인식돼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진다. 사진 출처 마이크로블링크
#1. 마트에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간다. 고객은 지갑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전자결제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다. 결제할 은행계좌를 고르고 나니 6자리 숫자가 뜬다. 계산대에 설치된 무선단말기가 쇼핑목록, 구매액을 종합해 구매할 것인지 묻는 메시지를 고객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한 것이다. 그 숫자를 터치하면 계산은 끝. 돈은 고객의 은행계좌에서 실시간으로 빠져나간다.

내년부터 HSBC 등의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영국인들은 웬만한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이런 첨단 결제방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결제 과정에서 카드번호 같은 개인정보가 빠져나갈 일은 전혀 없다.

#2. 영국의 넛메그는 바쁜 소액투자자들을 위한 온라인 자산운용사다. 이용 절차는 간단하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뒤 투자목표와 기간, 수용 가능한 투자위험 수준 등을 입력하면 10분 이내에 자신에게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최소 투자금액은 1000파운드(약 169만 원)로 수만 파운드를 요구하는 다른 운용사에 비해 훨씬 낮고 운용수수료 역시 1% 미만으로 저렴하다. 이처럼 값싸고 신속한 자산관리가 가능한 것은 온라인을 통해 모든 서비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 금융이 첨단 기술을 만났을 때

관련기사
공과금 영수증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고, 수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에 입금이 된다. 팔찌를 단말기에 갖다 대 식당에서 밥값을 계산하고, 끼고 있는 스마트 안경에 음성으로 명령을 하면 친구에게 송금까지 할 수 있다.

금융이 기술을 만나면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일들이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다. 과거 신용카드 보급이나 인터넷뱅킹의 도입에 맞먹는 ‘금융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금융의 범위는 수년 전만 해도 결제, 송금 등 간단한 금융 서비스에 국한됐다. 하지만 이제는 예금, 대출, 자산운용 등 기존 금융사의 주력 업무분야에 새로운 ‘핀테크 기업’들이 출현해 신산업군(群)을 이루기 시작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핀테크 사례는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오프라인 점포 없이 일반 시중은행의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그대로 제공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선 1990년대부터 생겨났지만 한국에는 규제 때문에 아직 한 곳도 없다. 이들은 초기에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고전했지만 이제는 특유의 가격경쟁력과 접근성을 내세워 일반 은행들을 위협하는 금융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피도르은행 등 일부 인터넷 은행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으로 고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재테크 커뮤니티’의 기능까지 수행한다.

이런 핀테크 기업들이 기존 금융사들에 비해 갖는 가장 큰 강점은 소비자에게 빠르고 값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업무가 인터넷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인건비도 아낄 수 있다. 일례로 온라인 해외송금 기업들은 수수료가 은행의 10% 안팎에 불과하고 송금 기간도 1∼3일로 최대 일주일 이상 걸리는 기존 은행보다 훨씬 짧다. 돈을 빌릴 때도 은행보다는 온라인 대출중개 업체를 이용하는 게 싸다. 대출자와 차입자를 수수료만 받고 직접 연결해주기 때문에 중간에 예대마진을 취하는 은행보다 여러모로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 “금융·IT의 융합, 세계적 흐름에 올라타야”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기존 금융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들은 모바일 문화에 익숙한 청년층부터 공략하면서 조만간 전체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 공룡들이 지배하던 기존 생태계에 몸놀림이 빠르고 적응력이 뛰어난 ‘가젤 기업’들이 나타나 정글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존 금융사들과 신생 핀테크 기업 간의 인수합병(M&A)과 이합집산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기업에 금융업을 허용해 알리바바의 성공을 이끈 중국 사례처럼 핀테크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혁세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전 금융감독원장)는 “모바일을 이용한 금융거래의 확산과 산업 간 융합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우리만 뒤처지게 될 것”이라며 “금융실명제나 정보보안 등 핀테크 발전의 제약요인을 풀기 위해 정부가 하루빨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한국의 인터넷 기술은 이미 뛰어난 수준인 만큼 금산분리 등 규제의 선별적인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며 “핀테크 열풍으로 기존 은행들은 경쟁이 심화되겠지만 성장 한계에 빠진 금융업의 본질을 바꾸는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갈길 바쁜 국내업계… 규제에 발목잡혀 3∼5년 뒤처져 ▼

글로벌 금융혁명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이던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뒤늦게 핀테크 혁명에 뛰어들고 있다. 3월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천송이 코트’ 논란이 촉발된 이후 금융당국이 비로소 핀테크 규제개혁에 시동을 걸었고 금융회사들도 스마트금융 비즈니스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은 8월부터 ‘모바일 디지털 통장’을 발급하고 있다. 예·적금 통장을 비롯해 청약통장, 주택담보대출 통장 등 실물통장을 대체하는 것으로, 우리은행은 점진적으로 종이통장을 없앤다는 방침을 세웠다. NH농협은행은 ‘스마트금융센터’를 구축하고 인터넷, 스마트폰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합해 관리할 계획이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 카드, 증권사들도 숨 가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등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 행태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카드 상품을 선보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증권사 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펀드슈퍼마켓도 올해 4월 도입됐다.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적극적이다. 다음카카오는 9월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를 선보였고 네이버는 올해 안으로 일본에서 송금 및 결제 기능을 갖춘 ‘라인페이’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런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규제가 여전히 문제다. 뱅크월렛카카오는 금융당국의 보안 승인과 은행과의 제휴 절차 등이 늦어지면서 서비스 개시일이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국내 핀테크 창업기업들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에 대한 사전 규제와 공인인증서로 대표돼 온 특정 기술 규제로 인해 자생이 불가능할 정도다.

동아일보가 금융회사 스마트금융 담당 임원 등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1명이 한국의 핀테크 수준이 금융 선진국에 비해 3∼5년 정도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알리페이, 페이팔 등 외국 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할 경우 국내 결제대행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팀원=유재동 정임수 김재영 신민기 송충현 박민우(경제부) 기자

#핀테크#스마트폰#청구서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