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터뜨린 국민… “여당도 야당도 제발 밥값 좀 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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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추석민심]기자들이 현장에서 들어보니

개점휴업 국회 언제 제 역할 하려나 추석 연휴 동안 맑은 날씨 속에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슈퍼문’ 보름달이 떠올랐지만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간 합의 부재 속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 친 차량 진입 통제용 바리케이드가 국회의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개점휴업 국회 언제 제 역할 하려나 추석 연휴 동안 맑은 날씨 속에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슈퍼문’ 보름달이 떠올랐지만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간 합의 부재 속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 친 차량 진입 통제용 바리케이드가 국회의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민족의 명절 한가위의 민심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에 가까웠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개월이 다 되도록 특별법 제정도 못한 채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피로감은 5월 이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불임 국회에 대한 절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야 정치권을 민의의 대변자로 신뢰할 수 없다는 근본적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추석 연휴 기간 들은 민심을 가감 없이 전한다. 》

정치권 한목소리 비판 수도권 “與, 유족 보듬지 못하고 野는 대안 없이 비판만” ▼

“이제 지켜보는 것도 지겹다. 여야 모두 밥값이라도 좀 했으면….”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수도권 주민들의 추석 밥상에서 거론된 정치권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꽁꽁 얼어붙은 듯했다. 세월호 정국 속에 다섯 달 가까이 ‘밥값’도 못하고 끌려 다니는 국회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특히 컸다. 비판의 화살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새누리당이나 대안 없이 반대만 거듭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모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거주하는 한모 씨(51·여)는 “처음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야당에 대한 동정심이 컸는데, 지금은 둘 다 순수성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박모 씨(30)도 “협상 초반에 야당이 유가족과 충분한 소통만 했더라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야당과 유가족이 오른쪽으로 한발, 여당이 왼쪽으로 한발 다가가겠다는 자세를 잡아야 정국이 풀리지 않겠냐”며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여당에 대한 비판도 냉정했다. 사고 초반 유가족의 마음을 충분히 보듬지 못한 여당이 협상 과정에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고등학생인 변모 군(17)은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다. 친구들이 ‘다음 선거에서 절대 새누리당은 찍지 말자’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피로감’도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52·여)는 “몇 달째 TV만 틀면 가슴 아픈 이야기뿐이라 이제 우리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국회의원 추석 상여금 지급 논란과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선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홍모 씨(24)는 “국회의원도 PSAT(공직적격성평가) 같은 기본 소양검사를 거친 사람에게만 자격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75·여)도 “일 안 하는 의원과 거기 딸린 보좌진까지 전부 다 우리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거냐”라고 물으며 혀를 찼다.

무능 국회의원 질타한 충청 “동료 체포나 막는 의원 세비부터 주지 말아야” ▼

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의 한 초등학교 동창 모임. 추석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 간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어느 순간 정치 얘기가 나오면서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신모 씨(44)는 “처리해야 할 민생 법안은 산더미인데 여야 모두 자기 입장만 주장해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고 성토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정모 씨(44)는 “국회의원이 일은 않고 동료 의원의 체포를 막고 있어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의 지역구(충북 제천-단양) 주민 신모 씨(43)는 “청렴해야 할 국회의원이 뇌물을 받았다는데 국회가 이를 감싸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충남 보령시 청소면 이정웅 씨(82)는 “기초연금 두 번 지급하더니 내년부터는 ‘예산 부족 때문에 안 준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려면 일 안 하는 국회의원의 세비부터 주지 말아야 한다”며 분개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로 국회가 장기간 공전하고 있는 데 대해선 유가족들도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는 분위기였다. 세종시에 사는 유모 씨(52)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온 국민이 많이 지쳐 있다. 유족들도 이제 국민을 세월호에서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두고 그의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 충청권에서조차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의 오모 씨(70)는 “박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충북지역 모 대학의 교수인 조모 씨(54)는 “지금의 꽉 막힌 정국을 타개하고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기 위해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의 정모 씨(50)는 “국회에서 힘겨루기만 하고 있으니 대통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생회복 주문 많았던 영남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 현안 신경쓸 여유 없어” ▼

부산 울산 경남과 대구 경북 등 영남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추석을 전후해 지역 주민들은 경기침체와 관련한 불만을 많이 쏟아냈다. 현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접은 탓인지 현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석 전날인 7일 오후 8시경.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석계리 팔각정에서 추석을 쇠러 귀향한 50대 8명과 60대 마을 주민이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명절 전날 만나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설날엔 6·4 지방선거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지만 이번엔 마을 현안이나 경남도정에 관심을 나타냈을 뿐 정국과 관련한 언급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50대 초반의 자영업자인 김모 씨는 “추석 경기가 너무 좋지 않다 보니 정치적인 현안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며 “먹고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냐”고 운을 뗐다. 그는 “세월호 문제도 장기화하다 보니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회사원인 최석태 씨(54)는 “정부가 이제 세월호 선체도 인양하고 특별법도 빨리 만들고 그렇게 해야 한다”며 세월호 문제가 이제는 매듭지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 마을 친목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최진호 씨(67)는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여전하다”며 “야당이 너무 못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다만 일부 농민들은 쌀 시장 개방과 축산물 가격 하락 등으로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제조업체 대표인 장용주 씨(54)도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이제 사태 수습, 사후 처리, 정국 안정 등을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상공회의소 신용우 팀장은 “장기적인 경기침체, 세월호 여파와 폭우 피해 등으로 창원공단도 썰렁한 한가위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 칠성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손모 씨(55)는 “이번 추석은 지난해보다 장사가 안됐다. 명절은 경기 살리기에 좋은 기회인데 올해는 세월호 때문인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월호법 결단 촉구한 호남 “靑, 조사받게 양보하고 野, DJ정신 배웠으면” ▼

세월호 특별법 교착 정국 장기화에 대한 호남 민심은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며 유가족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조속한 제정을 바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자영업자 이재호 씨(50·광주 북구 용봉동)는 “미국도 9·11테러 후 관련법 제정이 쉽지는 않았다. 국가 안정을 위해 세월호 특별법이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고 했다. 신장훈 씨(46·광주 동구 학동)도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백번 이해하지만 우리는 6·25전쟁을 비롯해 많은 참사를 겪었다. 어려울수록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는 박태성 씨(47·전남 장성군 삼서면)는 “특별법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큰 테두리를 봐야 한다”고 밝혔다.

특별법의 최대 쟁점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 못지않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전북 전주의 전문직 근로자 황모 씨(56)는 “특별법의 포인트는 청와대 조사 가능 여부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를 조사할 수 있어야 진전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정치권의 세월호 특별법 대처 방식에 대해선 모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식물국회라는 불신이 팽배했다. 9일 광주 북구의 한 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문성남 씨(77·택시 운전사)는 “세월호 특별법이 정치적 셈법으로 지연되고 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질타도 쏟아졌다. 회사원 전현진 씨(46·전남 구례군)는 “새정치연합이 DJ(고 김대중 대통령)처럼 정치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운동가 정용화 씨(62·광주 북구 우산동)는 “현재 야당은 공무원 봉급쟁이 수준”이라며 “최소한 국회 기능은 정상화하면서 큰 전략과 작은 전술을 구분해 잘 구사해야 하는데, 지금 야당은 리더십이 없어 표류 중”이라고 꼬집었다. 이모 씨는 “야당이 계파 싸움만 해 해결 능력이 없다”면서 “중도파 의원들이 민생법안 통과를 외쳤지만 강경파가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해 교착 정국이 장기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대전=지명훈 mhjee@donga.com / 청주=장기우 기자
사천=강정훈 manman@donga.com
부산=조용휘 / 대구=이권효 기자
전주=김광오 kokim@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
#추석민심#국회#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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