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얼굴보니 마음놓여… 이번엔 꼭 軍폭력 뿌리뽑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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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 구타사망 파문] 윤일병사건 후 첫 주말… 면회 북적
면회소 꽉찬 윤일병 소속 28사단… 총기난사 22사단도 부모들 몰려

“아들은 언제”… 뙤약볕 아래 기다리는 어머니 9일 경기 연천군 28사단에서 한 병사가 면회소 쪽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오고 있다. 다른 병사를 기다리는 한 어머니가 뙤약볕 아래에서 양산을 받쳐 들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아들은 언제”… 뙤약볕 아래 기다리는 어머니 9일 경기 연천군 28사단에서 한 병사가 면회소 쪽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오고 있다. 다른 병사를 기다리는 한 어머니가 뙤약볕 아래에서 양산을 받쳐 들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선임병 4명에게 구타를 당해 숨진 윤모 일병(22) 사건 파문이 확산된 뒤 첫 주말(9, 10일)을 맞아 전국 군부대에 면회객들이 몰렸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설마 아직도 군에 구타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다가 윤 일병 사건이 언론에 낱낱이 보도되자 일제히 면회에 나서 자식의 안부를 확인했다. 구타 사건이 터진 28사단 소속 병사를 면회 온 한 아버지는 “부대 안에 그런 폭력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이번에야말로 군 폭력을 뿌리부터 근절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아들이 ‘잘못하면 죽는 것 아니냐’고 말해”

윤 일병이 소속됐던 경기 연천군 28사단 포병대대에는 아침 일찍부터 면회객이 줄을 이었다. 9일 면회를 마친 한 가족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면회 시간 내내 4, 5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부대 내 면회 장소에 빈자리가 없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포병대대는 전체 200여 명 규모의 소규모 독립 대대로 알려졌다.

면회가 시작된 오전 9시부터 부대 앞에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다. 위병소에 아들의 이름을 밝히고 영내 입장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부대에 들어간 부모들은 위병소 바로 뒤에 마련된 면회소에서 아들을 만나자마자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난 듯 힘껏 껴안았다.

윤 일병 사건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느껴 부대를 찾은 면회객 중에는 계급이 낮은 이등병과 일병 부모가 대부분이었다. 이등병 아들을 둔 한 부모는 “대대장이 직접 면회소로 와 부모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며 “구타 같은 건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일병 아들을 둔 한 어머니도 “우리 아이 부대에서 사건이 났다고 해서 깜짝 놀라 이번 주에 면회를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본보 취재진이 면회 직후 만난 가족과 병사들은 취재에 응했다가 혹시 부대에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지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이 면회객 취재에 나서자 해당 부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날 부대를 찾은 한 병사 아버지는 “아들이 사고 소식을 처음 접한 이후 몹시 겁내면서 ‘여기서 잘못하면 죽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최근 한 달 동안 매주 부대를 찾았다는 그는 “(사고 보도가 대대적으로 난) 지난주부터 갑자기 면회객에 대한 감독이 심해졌다”며 “면회실도 지저분했는데 말끔하게 치워놨다”고 말했다. 기자가 위병소 앞에서 세어 보니 일반인 차량 15대가 면회 시간 동안 면회소를 찾았다.

○ ‘총기 난사’ 22사단도 면회 줄 이어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에도 가족 면회가 이어졌다. 22사단은 6월 임모 병장(22)의 총기 난사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다 3월에는 암기 강요와 욕설에 시달리던 한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부대다.

윤모 씨(47·여·서울)는 9일 면회를 통해 22사단에서 복무 중인 아들을 5월 신병교육대 수료식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다. 최근 윤 일병 사건으로 부대 내에 가혹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뒤 ‘혹시 내 아들도…’ 하는 걱정에 서둘러 면회를 왔다.

윤 씨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아무 걱정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아 아침 일찍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동해안 최북단까지 찾아왔다. 외박 허락을 받고 나온 아들과 시간을 보낸 윤 씨는 아들의 건강한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걱정을 내려놓았다. 윤 씨 아들도 “그런 가혹행위는 우리 부대에 없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윤 씨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심정이 다 같지 않겠느냐. 다시는 군대에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씨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고성군 간성읍의 한 음식점에서 숯불갈비를 실컷 먹였다.

22사단에 복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온 가족이 왔다는 권모 씨(50·대전)는 “이번 사건이 군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아픔이지만 이 기회에 근본적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며 “겉으로 외상만 치료하려고 했다가는 속이 곪고 썩어 결국 잘라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천=권오혁 hyuk@donga.com·조동주·고성=이인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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