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機 미사일 피격]말레이 총리 할머니… 근무 바꾼 승무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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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안타까운 사연들

우크라이나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의 안타깝고 기막힌 사연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던 어린이 8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격추된 여객기 잔해에서는 어린이들이 갖고 놀았던 것으로 보이는 인형들과 책을 담은 가방들이 발견됐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와 비탄에 빠진 네덜란드에서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의 현장 훼손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 어린이 희생자 유난히 많아

호주 국적의 모(12), 에비(10·여), 오티스(8) 삼남매는 가족여행을 갔다가 외할아버지 닉 노리스 씨(68)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유럽여행을 즐긴 뒤 외할아버지와 함께 호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노리스 씨는 “부모도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며 딸과 사위를 네덜란드에 며칠 더 남아 있게 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율리 하스티니 씨(44·여)는 네덜란드인 남편 및 두 자녀와 함께 인도네시아 수라카르타에 있는 고향집을 찾아가던 길에 목숨을 잃었다. 네덜란드의 한 제약회사에 일하는 그는 남편 욘 파울리선 씨(47)와 함께 아들 아르주나(5), 딸 스리(3)를 데리고 고향 방문길에 올랐다. 그의 지인들은 “지난해 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몹시 슬퍼했다”고 전했다. 하스티니 씨는 이번에 어머니 무덤을 찾을 계획이었다.

유럽 여행에 나섰던 말레이시아 일가족 6명이 모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탐비 지에 씨와 부인 아리자 가잘리 씨는 무함마드 아피프 군(19) 등 4남매를 데리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영국인 변호사 존 앨런 씨(43)와 아내 샌드라 씨는 16세, 14세, 8세인 세 아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나섰다가 희생됐다.

○ 4개월 만에 운명 뒤바뀐 부부

말레이시아 언론 ‘말레이시안 인사이더’는 MH17에 탑승했던 승무원 산지드 싱 씨(41)가 동료와 근무를 바꿨다가 변을 당했다고 18일 전했다. 싱 씨의 아버지는 “낮 12시쯤 집에 온다고 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라며 오열했다. 같은 항공사 소속 승무원인 싱 씨의 부인은 올해 3월 8일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중 실종된 MH370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근무를 바꿔 살아남았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의붓할머니도 격추된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라작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무함마드 노아 씨의 두 번째 부인이던 시티 아미라 파라위라 씨(83)는 고향으로 가다 숨졌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국제에이즈학회(IAS)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MH17기를 탔다가 사망한 에이즈연구 전문가들은 당초 100여 명이 탑승했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지만 학회의 공식 확인 결과 탑승한 학자는 6명이었다.

○ 네덜란드 전역 추도 분위기


가장 많은 목숨이 희생된 네덜란드에서는 암스테르담 교외에 있는 도시 힐베르쉼의 인구 8만 명이 모두 비탄에 빠졌다. 이 도시에 사는 세 가족과 19세 청년 등 13명이 한꺼번에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힐베르쉼 중심가의 성 비투스 성당에는 숨진 이웃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빌럼 비테베인 네덜란드 상원의원과 가족들도 목숨을 잃었다. 그는 아내, 딸과 함께 이번 사고기에 탑승했다.

스히폴 국제공항에는 누군가가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을 가져다 놓기 시작하면서 희생자 위로구역이 마련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위로 구역에는 꽃과 인형, 카드가 쌓이고 있다. 유럽 최대 자전거 경주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한 네덜란드 선수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도 현지 주민들이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꽃과 촛불이 가득하다고 전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말레이시아항공 미사일 피격#말레이시아항공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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