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재신]과거에 눈감는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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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신 주독일 대사
김재신 주독일 대사
며칠 전 나치 시절 가장 악명이 높았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다녀왔다.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300km 떨어진 바이마르 인근에 위치한 이 수용소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 바 있는 아카데미 수상작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독일 내 최대 규모의 강제노동수용소로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해방되기까지 정치범, 유대인, 전쟁포로, 집시 등 총 25만 명이 수용되어 약 5만1000명이 과도한 노동, 학대, 질병, 굶주림, 생체실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수용소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은 수용소에서 목격한 장면이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고 했다. 1991년부터 상시 기념관으로 일반에 개방돼 연간 약 8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수용소 정문을 들어서니 많은 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인솔교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메모를 하고 있었다. 필자를 안내한 수용소 관계자는 수용소 내 시설들을 보여주면서 당시의 참혹했던 실상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고문실, 생체실험실, 시체소각장 등을 안내할 때는 “인간이 어떻게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인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역사적인 과오를 부정하거나, 감추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널리 알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학교 교과 과정으로도 9∼13학년의 나치 강제수용소 견학을 의무화하고 있다. 나치 만행과 관련한 기념관과 박물관들도 많이 만들어 무료로 상시 개방하고 있다.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는 나치 정권 당시의 사진과 각종 자료를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2005년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조성한 학살 유대인 추모공원은 역사적 기억과 이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으려는 독일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독일 내에서 추방하고 몰살시킬 목적으로 1942년 1월 베를린 인근 ‘반제’에서 소집한 회의(‘Wannsee Conference’) 현장도 원형대로 복원해 공개하고 있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등에서 홀로코스트에 사용된 독가스 치클론-B 제조공장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독일의 철저한 ‘과거사 반성’은 나치의 이념과 사상에 대한 분명한 단절로부터 시작된다. 독일에서는 나치와 관련된 모든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나치즘의 상징인 갈고리십자가(‘하켄크로이츠’) 문양은 법적으로 사용이 금지돼 있다. 1945년 이후 70년간 판매 금지된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은 2016년 이후에도 계속 금지하기로 최근 결정됐다. 나치 범죄에 관해서는 공소시효도 없다. 현재까지도 나치 전범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재판에 회부하고 있으며 국내외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배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지도 독일의 정치지도자들은 나치 희생자 및 피해국을 방문할 때마다 과거 악행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오히려 피해국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최근 벨기에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행사 때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가장 많은 환영을 받았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피해국에 대한 화해 노력 없이는 오늘과 같은 독일의 통일, 국제적 지위 향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용소 문을 나서면서 독일 통일의 주역 중 한 사람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이 2차대전 종전 4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하게 된다.”

김재신 주독일 대사
#나치#독일#과거사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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