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분 애매한 원칙, 노사갈등 새 불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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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포함]
“청구금액이 회사가 감당 못할 정도로 커선 안돼”
근로자가 “소급분 달라” 소송땐 법원이 적정한 수준 판결해야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근로자들이 임금채권 소멸시효인 과거 3년간 시간외수당 미지급분을 소급해서 받을 수 있을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원칙을 밝혔다. 우선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뺀 채 통상임금을 산정한 과거의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근로자는 이 판단을 근거로 과거에 받았어야 할 임금을 돌려달라고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 과정에서 두 번째 원칙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信義則)’이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근로자가 회사에 임금 소급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청구한 금액의 규모가 현재 회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 당사자가 형평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하면 안 된다는 근대사법의 대원칙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대상이 된 갑을오토텍 사건의 경우 노사 양쪽 모두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전제로 임금 협상을 맺었는데 뒤늦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고 주장하면 사측이 예상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므로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물론 근로자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과거에 받았어야 할 상여금을 더 달라고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법률상 통상임금에 속하는 임금을 제외시킨 노사 합의는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근로자가 청구하는 금액이 회사를 망하게 할 정도로 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더 받고자 하는 근로자와 덜 주려는 회사의 입장은 맞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얼마가 적정한 금액인지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소급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게 기존 단체협약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에 대한 노사 간 합의가 있었는지와 추가 지급 규모가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가 되는지다. 하지만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걸로 여겨지던 과거에 명시적으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회사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 역시 다툼의 소지가 크다.

이번 판결을 재계와 노동계 어느 쪽도 완승 또는 완패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노동계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이라는 숙원을 이뤘다. 재계는 앞으로 부담이 늘어나지만 과거 소급분에 대해서는 추가로 책임을 질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성과다. 과거 소급분에 대해 노조 측이 소송을 걸더라도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사측이 입증하면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조 측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결국 각 사업장의 통상임금 문제는 해당 노사의 손에 달린 셈이다.

전지성 verso@donga.com·강경석 기자
#통상임금#정기상여금#청구금액#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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