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허승호]‘SDSN 한국포럼’ 출범 행사 참석차 방한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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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주도한 한국, SD 글로벌리더 지위도 유지해야

제프리 색스 교수는 “한국의 녹색성장 리더십을 자산으로 활용하라”고 권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제프리 색스 교수는 “한국의 녹색성장 리더십을 자산으로 활용하라”고 권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래리 서머스, 폴 크루그먼과 함께 ‘200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석학이다. 그가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SDSN) 한국포럼’ 출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방한했다. SDSN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작년 8월 발족시킨 유엔 후원조직으로 반 총장은 자신의 특별고문인 색스 교수를 SDSN의 추진 책임자 겸 상임대표로 위촉했다. 1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색스 교수를 만났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SDSN 한국포럼의 발족 행사와 관련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경제는 지난 2세대 동안 너무 성공적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지구의 기후와 환경에 위협을 줄 지경에 이르렀다. 또 미국 중국 한국 등 주요 경제국에서 성장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환경 측면에서,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성장의 질(質)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엔은 2011년 ‘지속가능발전(SD)’을 인류사회 공통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언했고, 2015∼2030년에 적용할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채택하기로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를 위해 내게 특별고문으로 SDSN의 책임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경제성장-사회통합-환경친화 동시구현

―당신은 개발경제학을 전공했다. 언제부터 지속가능발전에 관심을 갖게 됐나. 경제개발은 지속가능발전과 종종 충돌하지 않는가.

“방금 드린 내 명함을 자세히 봐 달라. 컬럼비아대의 지속가능개발 교수라고 돼 있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가능개발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로 일해 왔다.”

―SD라고 하면 흔히 환경문제를 생각한다. 당신이 말하는 SD는 범위가 더 넓다.

“SD와 관련해 가장 좋은 정의는 경제성장, 사회통합, 환경친화라는 3가지 목표의 동시 구현이다. 성장하되 공정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적으로 불안해지고, 환경파괴를 막지 못하면 재난에 빠질 것이다. 가끔 4번째 차원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좋은 정부’다. 좋은 지배구조 없이는 앞의 세 가지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금 정부 얘기를 했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녹색성장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

“한국은 SD와 관련해 글로벌 리더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 1992년 유엔의 리우 정상회의에서 지속가능개발 어젠다를 채택했고 지금은 반기문 총장이 담당하고 있다. 한국은 김용 총재가 있는 세계은행의 주요 기부국이다. 한국은 녹색성장의 가장 적극적인 지도국으로 최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녹색기후기금(GCI) 등 2개의 국제기구를 유치했다. 나 또한 당시 이들 기구의 한국 유치를 도우며 큰 보람을 느꼈다.”

선진국, 탄소 배출 감축 앞장서야

―(말을 끊고) 이들을 유치할 때 당신의 역할이 있었나.

“내가 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녹색성장에 대한 한국의 열정과 관심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에서의 내 위치 등을 활용해) 세계에 이를 알리고 한국을 지지하는 역할을 했다.”

―아까 얘기(SD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를 계속 들려 달라.

“한국은 기술적 측면에서도 역동적이다. 정보기술(IT)은 첨단 수준이다. 저탄소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전기자동차를 개발해야 하고, 에너지 효율이 더 좋고 자원재활용에 유리한 스마트빌딩을 설계해야 한다. 어디서나 태양열을 활용해야 하고 원자력발전 기술도 뛰어나야 한다. 녹색성장이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여 환경파괴를 최소화하자는 것 아닌가. 한국은 에너지 기술의 많은 부분에서 선두에 서 있다. 녹색성장과 관련한 한국의 역할은 계속돼야 한다.”

―내주 대구에서 세계에너지총회(WEC)가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가.(WEC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국제회의로 ‘에너지 올림픽’이라고 불린다. 13∼1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며 60여 개국의 에너지 관련 장관급 인사를 포함해 14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한다.)

“물론이다. SDSN 한국포럼을 14일 발족시키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SDSN에 참여한 많은 방한 인사들이 WEC에도 참석할 것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지속가능개발보다는 당장의 성장과 빈곤 탈출에 더 관심이 크다.

“그래서 말로만 설득하면 안 된다. 국제적 차원에서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미국은 연간 1인당 17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반면 세계 평균은 2t에 불과하다. 미국의 배출량 축소가 선행돼야 한다. 선진국이 감축한 탄소배출량을 개도국에 공여해 경제개발의 기회를 줄 수 있다. 또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한데 여기서도 선진국의 책임이 크다. 풍력 태양 수소전지 원자력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여력이 있는 선진국이 앞장서야 한다.”

―기업의 역할은….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 기술이 필요하며 기술은 기업이 개발한다. 이는 에너지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리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전기자동차의 핵심은 전지 개발인데 한국 기업이 첨단 아닌가. 한국기업들은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 매우 유리하다. 한국 기업의 활약을 기대한다.”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해 北개방 유도해야

―주제를 바꿔보자. 당신은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연기됐다.

“최근 북한으로부터 초청받았고 나도 가고 싶다. 하지만 유엔에서의 내 위치 등을 생각할 때 지금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북한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긴장완화를 위해 내게 역할이 있다면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방북의 적절한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 경제의 회생과 관련한 당신의 아이디어는….

“북한의 빈곤과 기아문제는 그 자체로 심각할 뿐 아니라 지역과 세계의 안정에도 위협이다. 인권문제도 좌시할 수 없다. 해법은 개방과 자율화뿐이다. 문제는 북이 이 길로 나오도록 어떻게 유도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며 적절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최근 당신의 빅 푸시 이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성공 사례가 없지 않은가’ 하는 거다.(빅 푸시란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경제발전 초기에 개발투자가 속도와 규모에서 신속하고 충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발경제학 이론이다.)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개방해야 하고, 투자와 기술개발에서 정부과 민간이 합심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해외의 원조도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의해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빅 푸시 이론의 요체다. 한국은 너무나 뚜렷한 성공 사례이며 중국도 좋은 사례다.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는 지금 아프리카에 적용되고 있으며 성공 사례가 많지만 더 많은 자극과 지원이 필요하다. 새마을운동 등 한국이 성공 경험을 확산하는 데 인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호소하는 것도 이번 방한의 목적 중 하나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녹색성장#지속가능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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