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약물 파문 벤 존슨, 25년만에 ‘反도핑 전도사’로 돌아오다

동아일보 입력 2013-09-25 03:00수정 2013-09-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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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벤 존슨 막는게 나의 사명입니다”
“당시 선수 40% 도핑… 지금 더 심각” 잠실 트랙서 약물 근절 탄원 이벤트
벤 존슨(캐나다)이 1988년 9월 24일 열린 서울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79의 경이로운 세계기록으로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고 있다(위쪽 사진). 존슨은 3일 뒤 금지약물 양성 반응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불명예스럽게 한국을 떠났다. ‘반(反) 도핑’ 캠페인 행사차 한국을 방문한 존슨이 24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벤 존슨 9초79 세계신’이란 본보 당시 9월 24일자 1면 기사와 ‘벤 존슨 약물복용 금 박탈’이란 27일자 1면 기사를 들어 보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2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잘못된 선택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1988년 9월 24일 열린 서울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79의 경이로운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 ‘벤 존슨 9초79 세계신’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본보 1면 기사와 3일 뒤인 27일 ‘벤 존슨 약물복용 금 박탈’ 1면 기사를 동시에 보여주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25년이 흐른 지금은 ‘반(反) 도핑(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행위)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되살아난 ‘아픈 기억’은 그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딱 25년 전 금메달을 딴 24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만난 캐나다의 ‘일그러진 육상 영웅’ 벤 존슨(52)은 “도핑은 내게서 금메달과 세계기록, 명성을 앗아갔다. 난 지금도 그 잘못된 선택이 만들어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이라며 회한에 잠겼다.

당시 존슨은 1년 전 자신이 세운 9초83의 종전 세계기록을 깨며 미국의 육상 영웅 칼 루이스(9초92)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분과위원회가 존슨의 ‘애너볼릭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을 밝히며 금메달을 박탈해 불명예스럽게 트랙을 떠나야 했다. 당시 본보 이재호 최수묵 기자는 26일 오후 3시경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내 특종 보도를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IOC는 27일 새벽 부랴부랴 이 사실을 공표했다. 금메달은 2위 루이스가 승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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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은 “당시 칼 루이스 등 대다수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나만 걸렸다. 나만 정치적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살인 등 더한 죄를 지은 사람도 풀려나는 마당에 난 25년간 여전히 ‘약물 스프린터’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지금은 내가 좋은 일로 서울에 왔다는 사실에 기쁠 뿐이다”라고 말했다.

존슨은 호주의 스포츠의류 브랜드 ‘스킨스’와 함께 벌이는 도핑 방지 캠페인인 ‘올바른 길을 찾자(Choose Right Track)’ 행사로 한국에 왔다. 영국의 대니얼 고든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9.79*’(2012년 ESPN 방영·*는 도핑 문제로 공인되지 못한 기록을 뜻함) 촬영차 2008년 방한한 이후 5년 만의 방문이다.

▼ “스타 의식해 도핑 모른척 하는 기류 우려” ▼

‘9.79*’는 서울올림픽 당시 남자 100m 결선에 섰던 8명을 모두 인터뷰해 ‘과연 존슨만이 잘못했느냐’에 포커스를 둔 다큐멘터리였다.

존슨이 벌이는 캠페인은 도핑 방지에 대한 지구촌 팬들의 지지를 얻어 다양한 국제기구가 반도핑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홈페이지(www.puresport.skins.net)를 통해 도핑을 근절하자는 탄원서를 받으며 기금도 모으고 있다. 존슨은 2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당시 결선에서 달렸던 6번 트랙에 약 4000명이 보낸 탄원서로 만든 100m 길이의 두루마리를 펼친 뒤 달리는 도핑 근절 이벤트를 열었다. 존슨은 25일 스위스 로잔으로 날아가 IOC에 이 탄원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을 거치며 실시한 1차 캠페인을 무사히 마친 그는 지구촌의 관심을 끌기 위해 25년 전 ‘그날’에 맞춰 서울에 온 것이다.

“IOC 등 국제기구와 세계반도핑위원회(WADA), 각국의 스포츠단체가 반도핑에 적극적이지 않다. 1988년 당시 선수 중 약 40%가 도핑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더 심각하다. 도핑기술이 발전해 밝혀내기 힘든 측면도 있지만 스포츠 국제기구들이 모르는 척하는 측면도 있다. 특정 스타가 없어지면 그 스포츠의 발전은 없다는 잘못된 생각 탓이다.”

존슨은 ‘도핑과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선 돈과 열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WADA 등 반도핑기구가 독립성과 권위를 갖기 위해선 탄탄한 재정이 필요하며 선수는 물론이고 국제 및 국가 스포츠 기구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도핑을 없애려는 열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핑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돈이다. 요즘 성공의 지표는 돈이다. 기업의 후원을 더 많이 받으려면 기록이 좋아야 한다. 도핑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다. 이 정신적 ‘부패의 사슬’을 끊지 못하면 순수한 스포츠는 영원히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존슨은 “젊은 선수들이 도핑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해야 스포츠의 미래가 밝아진다. 또 도핑을 했을 때 비난보다는 보호하며 다시 하지 못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스포츠정신을 갉아먹는 도핑이 내 시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벤 존슨#도핑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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