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차 인선]정홍원, 30년 검사… “난 특별한 것 없는 보통사람”

  • Array
  • 입력 2013년 2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 정홍원 총리후보는 누구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저는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스펙도 갖고 있지 않은 보통사람입니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8일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보통사람이라고 지칭한 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설 때까지 울퉁불퉁했던 인생과 장관 같은 고위직을 지내지 못했던 공직생활을 회상한 표현으로 보인다.

○ 울퉁불퉁했던 어린 시절

그는 1944년 경남 하동에서 12남매(6남 6녀) 중 열째로 태어났다. 친척에 따르면 아버지는 유학자 집안에 집에 머슴이 있을 정도였으니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부산에 살던 한 친척이 머리가 좋은 정 후보자를 눈여겨보고 그를 데려가 부산 영도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셋째형이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자 부친이 실망한 나머지 교육시켜 봤자 쓸데없다고 생각해 김 후보자를 고향으로 ‘소환’했다고 한다. 12남매의 대가족이라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원하던 경남고에 진학하지 못한다.

정 후보자는 사범학교에 진학해 가사를 돌보는 것으로 부친과 타협을 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의 첫 발령지는 서울이었다고 한다. 낮에는 교사로 돈을 벌고 밤에는 성균관대 법과대 야간과정을 다녔다.

그는 197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인 김황식 총리와 사법시험(14회)과 사법연수원(4기) 동기다. 나이는 정 후보자가 네 살 많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1975년 화재로 아내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부인 최옥자 씨(62)와의 사이에 외아들(35)이 있다.

○ 정도(正道) 고집하는 강직한 검사

정 후보자는 30여 년간 검사생활을 하면서 ‘뒤탈 없는 수사’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19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사건, 수서지구 택지공급 비리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사건 등을 맡으며 특별수사통 검사로서 이름을 날렸다.

법조계에선 정 후보자에 대해 “원리원칙이 분명하고 정도를 고집하는 강직한 검사”라는 평가와 함께 “무색무취(無色無臭), 무해무득(無害無得)인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그는 술을 즐기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1999년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 기자들과 낮술을 마시다 “검찰이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했다”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자 대검 감찰부장이던 정 후보자가 검찰에 ‘낮술 금지’ 방침을 내리면서 이 관행이 사라졌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 후보자는 검사 시절 모르는 사람이 명절선물을 보내면 다시 돌려보낼 정도로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을 두루 듣고 판단하는 보스나 리더보다는 ‘검사’라는 직업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선배였지만 자신이 정해둔 원칙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아예 인연을 끊어버릴 정도로 무서운 선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정 후보자는 가까운 친척이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시절에는 호적이 없어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어주고 주민등록을 해주는 ‘무호적자 인권 찾아주기’ 서비스를 진행하는 등 취약계층의 법률복지에 힘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시절에는 전자투표를 위한 터치스크린 투표기 도입, 매니페스토 선거운동 도입을 주도했다.

○ 뚝심있는 공심위원장

정 후보자는 지난해 1월 4·11총선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으로 영입되기 전까지 박근혜 당선인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고사하는 정 후보자를 삼고초려로 권유해 위원장으로 모셨다고 한다. 정 후보자는 임명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쓴잔을 마시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위원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 대해 ‘신상 털기’가 없지 않다면서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뭐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났다. 가만히 혼자 생각해 보니 젖 먹을 때부터 지은 죄가 다 생각나더라”라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공천 과정에서 원칙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외부 비상대책위원들이 정 후보자가 결정한 1차 공천안에 대해 현 정부 핵심이라는 이유로 이재오 윤진식 의원의 공천에 반대하며 의결해주지 않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와 의결되기 전에 언론에 발표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대위가 재의를 요구하자 그는 그날 오후 원안에서 한 자도 고치지 않은 공천안을 재확정하며 뚝심을 과시했다.

‘컷오프 25%룰’에 걸린 김무성 전 의원 등 일부 의원에게 예외적으로 공천을 주자는 공천위원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끝까지 “룰을 깰 수 없다”고 고수해 관철하기도 했다.

당선인 측의 한 관계자는 “공천 과정에서 박 당선인의 신뢰가 두터워졌으며 당선인은 그를 부드럽고 합리적인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69) △진주사범학교 △성균관대 △사법시험 14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4과장 △서울지검 특별수사부 1·3부장, 3차장 △광주·부산지검장 △법무연수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동정민·최창봉 기자 ditto@donga.com
#정홍원#국무총리 후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