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 있어야 令선다”… 장관이 차관이하 인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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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인사 스타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권, 장관의 차관 인사권을 요즘보다 더 존중했다. 그러나 안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사찰’의 어두운 그림자도 공존했던 시절이다.

○ 장관 인선, 비서실과 총리 합작품

박 전 대통령은 국방·내무·법무·무임소장관, 국세청장, 관세청장, 철도청장, 병무청장 등 핵심적인 자리의 인선은 자신이 직접 했다. 국무총리도, 대통령비서실장도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그 외의 자리는 우선 비서실장을 불러 인사 추천을 지시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해 난상토론을 거쳐 해당 자리에 2명의 후보자를 추천했다. 박 전 대통령은 후보자 추천 명단에 반드시 출신 지역을 명시하도록 했고, 최종 결정한 내각 명단에도 직접 출신 지역을 적어 인선 발표 때 활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체신부 장관에는 가급적 호남 출신을 임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올린 후보군을 놓고 국무총리와도 상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총리가 건의하는 새 후보가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1971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건의에 따라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이 문교부 장관에, 윤주영 공보수석비서관이 문화공보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두 장관은 비서실의 추천 리스트에 없던 이들이다.

각 부 서기관 승진부터 차관까지 인선은 오롯이 장관의 몫이었다. 장관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야 해당 부서에서 영(令)이 바로 선다는 게 대통령의 소신이었다. 차관의 경우는 대통령이 인선에 도움을 줄 때도 있었다. 대통령이 신임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차관으로 누구를 쓰겠느냐”고 묻고 장관이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이 장관과 함께 상의를 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 인선은 비서실장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박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대통령이 사단장 시절 헌병부장을 지낸 이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었고, 군에 있을 때 당번병, 운전병이 부관과 운전사로 함께 있었을 뿐 그 이외 대통령과 지연, 학연, 군으로 엮인 사람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 사찰 통한 인사 검증

박 전 대통령 시절 ‘인사 검증’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대신 지금은 사라진 용어인 ‘존안(存案)카드’를 활용했다. 존안카드는 주요 인사의 신상 명세는 물론이고 평판과 뒷조사 내용까지 담긴 인사카드를 말한다.

존안카드는 중앙정보부가 주로 만들었지만 보안사, 치안본부, 검찰 등도 일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한 기관에서만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편파성을 우려한 조치였다.

최소한 각 부처의 1급 국장 이상은 모두 존안카드가 작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안보’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존안카드를 정당화했지만 이 시점에서 바라보면 사찰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찰을 하다 보니 존안카드에 담긴 내용은 지금 인사파일보다 내용이 훨씬 풍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박근혜, 열린 검증 체계 구축 숙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에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보장하고, 장관에게도 부처 및 산하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보장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약했다. 21일 청와대 조직개편안 발표 때 ‘인사위원회’를 신설해 투명한 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검증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박 전 대통령처럼 사찰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김세중 전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집권했기 때문에 인사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도 상당했다”며 “박 당선인은 당시보다 검증이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열린 인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인사권#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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