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포폴 중독’ 동료 셋 자살해도 머릿속엔 온통 환각주사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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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폴 늪에 빠져 6억 날린 유흥업소 여종업원의 고백
“‘포폴 중독’ 동료 셋 자살해도 머릿속엔 온통 환각주사 뿐”

프로포폴에 중독돼 약 구입에만 6억 원을 쓴 뒤 병원에서 이를 훔치다 들켜 불구속 입건된 이모 씨가 허술한 관리 실태를 고발하겠다며 작성한 수기. 수기에는 관리 실태가 허술한 병원 16곳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가평=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프로포폴에 중독돼 약 구입에만 6억 원을 쓴 뒤 병원에서 이를 훔치다 들켜 불구속 입건된 이모 씨가 허술한 관리 실태를 고발하겠다며 작성한 수기. 수기에는 관리 실태가 허술한 병원 16곳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가평=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009년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A성형외과. 이모 씨(32·여)는 지방분해 시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수술에 앞서 수면마취제(프로포폴)를 맞았는데 깨어나 보니 푹 잔 것처럼 개운하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이때부터 이 씨는 이 일대 성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 등을 전전하며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맞기 시작했다. 이 씨가 다녔던 대부분의 병원은 프로포폴을 맞으러 온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침상이 부족할 때는 환자대기실에 누워 맞는 사람도 있었다.

이 씨는 병원을 한 번 찾으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정도까지 프로포폴을 투약했다. 프로포폴 20mL를 10만 원에 구입해 5∼10mL씩 나눠 맞았다. 한 번에 20∼30분간 약효가 지속됐다. 약효가 사라지면 간호사를 불러 다시 주사를 맞았다. 여기저기서 간호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할 때는 하루에 200만 원을 썼다. 한 병원의 프로포폴 단골손님 중엔 익숙한 유명 연예인도 여러 명 있었다. 얼굴이 익다 보니 이 씨와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그로부터 근 3년 후인 지난달 이 씨는 경기 가평군 청평면 한국사이버시민마약감시단 재범방지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재활교육생이 됐다. 이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훔친 프로포폴을 투약한 뒤 의식을 잃고 자신의 차 안에 쓰러져 있다가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는 “다시 태어나 평범하고 예쁘게 살고 싶다”며 재범방지센터 입소를 자원했다.

동아일보는 23일 가평군의 재범방지센터에서 이 씨를 만나 프로포폴 중독의 위험과 실태에 대해 상세한 얘기를 들었다. 이 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번 돈과 빌린 돈 등 총 6억 원을 프로포폴 구입에 썼다고 한다. 그녀는 2009년 프로포폴을 처음 맞기 전부터도 이 약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의사나 유흥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포폴’, 프로포폴의 흰색에서 유래된 ‘우유주사’,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해 ‘힘주사’로 불리며 인기를 끌어 낯설지 않았다.

중독의 대가는 컸다. 환각 지속시간은 짧아졌고 곧 우울증이 찾아왔다. 프로포폴을 살 돈이 떨어지면 심각한 불안에 시달렸다. 지난달 쓰러진 채 발견됐을 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이 씨는 여러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그녀는 “중독이 심한 친구 3명이 목을 매 자살했다는데 무섭지도, 걱정되지도 않았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고 했다.

23일 경기 가평군 청평면에서 만난 이모씨가 직접 가꾼 텃밭을 바라보고 있다. 가평=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3일 경기 가평군 청평면에서 만난 이모씨가 직접 가꾼 텃밭을 바라보고 있다. 가평=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해 2월 프로포폴이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기 전까지 상당수 병원은 거리낌 없이 원하는 누구에게나 투약해줬다. 심지어 한 산부인과에는 산모보다 프로포폴 중독자가 더 많았다. 이 산부인과는 프로포폴 투약 손님이 늘자 주사기에 환자 이름을 쓰고 재사용하기도 했다.

의사 처방 없이 사용이 불가능해졌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올 2월 B성형외과 사무장은 프로포폴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이 씨에게 밀거래를 제안했다. 사무장은 이 씨와 병원 주변의 아파트 계단이나 후미진 화단에서 만나 50mL 앰풀 한 개에 50만 원을 받고 프로포폴을 50여 차례나 팔았다. 이 씨는 “의사들이 양팔과 다리, 심지어 목의 숱한 주삿바늘 자국을 보고도 대부분 아무 말 없이 투약했다”고 말했다. 24일 동아일보가 이 씨가 지목한 병원 중 세 곳을 방문했으나 이들은 프로포폴 오남용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자신과 같은 중독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이 다녔던 병원 16곳의 이름과 투약 날짜, 비용, 시술내용 등을 리스트로 만들었다.

성형시술이 늘면서 과거 의사나 연예인 등 특정 직업군뿐 아니라 이제는 일반인도 중독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한국사이버시민마약감시단 전경수 단장은 “프로포폴 중독으로 재범방지센터를 찾은 사람들의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특히 강남의 부유층 주부 사이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평=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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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폴#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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