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보다 무서운건 선생님의 무관심… 차라리 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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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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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가해학생들 호소에 李 교과부장관 진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체벌금지는 왜 생긴 거예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8일 강원도 춘천의 학교폭력 가해학생 교육기관인 강원학생교육원을 찾아 학생과 부모들을 만났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야기하면서 간담회가 끝나려 했다.

이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중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장관님, 잠깐만요”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비행청소년’이라고 소개한 뒤 체벌금지 이유를 물었다.

이 장관은 당황한 표정으로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부터 법적으로 신체적 체벌은 금지했다, 요즘 논란이 된 것은 간접체벌이다, 교과부는 간접체벌 수위를 학교가 정하도록 했다…. 장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잘못을 하면 선생님이 바로잡아주려고 엉덩이를 때렸어요. 그러고는 미안하다면서 먹을 것도 사주고 얘기도 들어줬거든요. 근데 지금은 수업시간에 무슨 짓을 해도 관심이 없어요. 그러다 사고 치면 갑자기 등교정지, 강제전학을 시켜요.”

다른 학생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 주위에 강제전학 당하는 애들 거의 다 집안이 어렵거든요. 멀리 떨어진 학교에 갈 방법이 없어요.” “여기 교육원에서 제일 좋았던 게 사람 취급을 해준다는 거였어요. 학교에선 제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밖에 나가도 욕이라도 해주는 선생님조차 없거든요.”

이 장관은 할 말을 잊은 듯했다. 잠시 멈췄다가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폭력 예방에 힘써서 징계를 받는 학생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여러분의 제안을 앞으로 대책에 반영하겠다.”

강원학생교육원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4주간의 합숙 교육을 하는 기관이다. 이날 장관과 만난 학생들은 15일에 2기 과정을 마쳤다.

▶본보 18일자 A6면
가슴에 가시 박힌 아이들, 상처를 보듬자…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장관이 떠난 뒤 교사들은 “아이들 이야기에 틀린 말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강원도교육청은 2010년 체벌금지 지침을 내렸다. 또 경기 서울 광주에 이어 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중이다.

교육원의 A 교사는 “체벌금지 이후 학교 현장에는 절차에 따라 등교정지나 전학을 시키면 편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했다. 다른 교사는 “여기 온 가해학생들은 대부분 가정과 학교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꾸중과 체벌이 관심이라면 등교정지나 강제전학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원학생교육원의 김웅일 연구사는 교육원에 입소한 어느 학생의 담임교사 사례를 언급했다. “교사가 이곳에 와서 학생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밤새 얘기를 하고 돌아갔다. 그런 관심이 있어야 학교폭력 피해자든, 가해자든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채널A 영상] 막말에 협박-성추행까지…학교폭력에 시달리는 교사들

춘천=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체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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