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좁아졌다 넓어지고, 길어졌다 짧아지고… 유니폼에서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으로 진화

  • Array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 2040 교복의 변천사

#1
남학생이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지 좀 줄여주세요.” “몇 인치로 줄여줄까?” “이 상태에서 줄여주세요.” “…?” 세탁소 주인은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한 번 고등학생을 쳐다봤다. “제 다리에 딱 붙여서 줄여주세요.” 학생이 바지 밑단을 잡으며, 재차 설명을 했다. “입고 있을 테니까 그대로 줄여주세요.” 갈수록 가관이었다. “그러면 바지를 아예 못 벗을 텐데.” 그래도 막무가내다. 바지를 고쳐준 지 며칠 지나 근처 학교의 학생 주임 선생님이 찾아왔다. 학생들이 바지를 수선하러 오더라도 절대 원하는 대로 고쳐주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 세탁소와 수선집을 돌고 있다고 했다. 2006년 겨울쯤이었다.

#2 3년을 입어야 한다는 말에 한 치수 크게 장만한 교복이었다. 하지만 무릎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유난히 길어 보이는 치마가 불만이었다. 최대한 치마 길이를 짧게 하기 위해 치마의 허리 부분을 두세 번씩 말아 입었다. “허리에 말아 올린 치마 펴서 입어!” 등굣길에 하루도 빠짐없이 선생님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행여 선생님의 눈초리가 허리를 향하지는 않을까 손에 든 가방으로 살짝 가려 봐도 소용이 없었다. 교복자율화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1983년을 2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누구나 학창 시절의 절반(중고교 시절)을 교복과 함께한다. 학교 안에서는 물론이고, 하굣길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들른 떡볶이 집에서도 교복 차림이다. 하지만 2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해 온 김모 씨(57)와 주부 이지영 씨(44)의 이야기 속 교복처럼, 학생들이 누구나 입고 다니는 이 교복이 모두에게 비슷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에 학교를 떠난 졸업생과 똑같은 교복을 입었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패션’이 있었다.

○ 교복에 덧씌워지기 시작하는 유행

1990년대 이전에도 통바지나 나팔바지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교복 패션은 소위 노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으며, 그것도 교복을 약간 고쳐 입거나 모자챙을 구부려 쓰는 등 ‘정해진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강했다. 이때는 ‘성장기’란 사실이 교복 구입 시 사이즈 결정의 가장 큰 기준이 됐다. 처음 산 교복 재킷은 엉덩이 선 정도까지 내려왔고, 치마는 보통 무릎 밑 5∼10cm 길이였다. 일제강점기의 특징을 벗어나지 못하던 교복은 1986년 가을 교복이 다시 도입되면서 이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교복은 1990년대 중반부터 유행에 따라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의 음악에 열광했던 중고등학생들은 그들의 옷차림을 따라하길 원했고, 이는 교복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학생이 원래 치수보다 두 사이즈 이상 큰 바지를 입고, 바짓단이 바닥에 끌리도록 바지를 내려입었다. 덩달아 여학생들의 치마도 점점 길어져 최대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가 유행했다. 이 시절 치마에 들어갔던 원단이면 요즘 입는 치마 2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1996년 모 교복 브랜드의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학생복’이라는 광고 카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교복 패션’이라는 말과 교복의 브랜드화가 본격적으로 촉진됐다. 교복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디자인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이는 교복이 단순한 단체복을 넘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 섹시함도 교복으로 표현한다

2000년 들어 가수 박지윤을 시작으로 이효리, 채연 등 여성 섹시 스타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학생들이 교복을 통해 ‘섹시함’을 드러내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교복 상의를 줄여서 입었어요. 상의도 배꼽까지 내려올 정도로 짧아졌죠.”(이모 씨·26·여)

여학생들의 딱 달라붙는 상의는 2006년 절정을 이뤘다. 스커트 길이는 더 길어져 무릎까지 내려왔지만, 상의와 마찬가지로 몸에 달라붙어 몸 라인을 그대로 드러냈다. 옷이 더 이상 달라붙을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고 나자 여학생들은 이제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마침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스키니 진)가 유행했다. 남학생들은 교복 바지통을 줄여 입기 시작했다. 심한 경우에는 통을 6인치까지 줄였다. 이런 바지는 까치발을 세우고서야 겨우 입을 수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느다란 다리가 ‘멋진 것’으로 인식됐다. 이는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도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이런 트렌드에는 전 사회적인 ‘몸짱’ 열풍도 한몫을 했다. 몸짱 열풍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A라인을 유행시켰다. 알파벳 A처럼 치마의 윗부분은 허리에 딱 맞고, 밑단은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졌다.

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0년대에 들어와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몸짱’ ‘S라인’ 등이 너무 많이 강조됐다. 자신의 외모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 학생들이 광범위하게 그런 것들을 접하다 보니, 일상에서 가장 많이 입고 생활하는 교복에까지 저절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마의 길이는 2007년부터 다시 무릎 위로 올라가며 짧아지기 시작했고, 상의 길이는 허리선까지 길어졌다. 2010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여학생은 짧은 하의에 넉넉한 겉차림옷(아우터·잠바 카디건 코트 스웨터 등 겉에 입는 옷들)을, 남학생은 슬림한 바지에 넉넉한 겉차림옷을 입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스포츠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카파와 험멜의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이 유행했다. 여학생들은 치마 안에, 남학생들은 교복 바지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도움말=이영은 SK네트웍스 스마트사업팀 디자인실장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