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80년전 숭의여학교 교복… 당대의 신여성 문화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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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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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건호 씨 제공
사진작가 이건호 씨 제공
오른쪽 사진은 1930년대 숭의여학교의 여름철 교복. 지난해 10월 ‘2011 한복 페스티벌’과 함께 열린 ‘신여성-근대의 패션리더’ 기획 전시회에서 복원 전시된 것이다.

전시회에서는 이화와 진명, 숭의, 신명 등 12개 여학교의 교복이 전시됐다. 서영희 예술감독(패션지 ‘보그’ 스타일리스트)은 각 학교 측과 졸업생들에게 자문하고 예전의 자료를 참고해 의상을 만들었다. 서 감독은 “특히 숭의여학교와 신명여학교 교복의 복원에는 90세가 넘은 졸업생들의 고증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숭의여학교는 초창기에 학생들이 자유로운 복장을 하도록 했으나, 1903년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도입했다. 사진의 교복은 1930년대 착용한 하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숭의여학교 졸업생들을 인터뷰한 임지윤 스타일리스트는 “졸업생들은 훨씬 이전부터 사진의 교복을 입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근대 여학교의 교복은 대부분 저고리(하복은 옅은 색, 동복은 진한 색)와 짙은 색상이 들어간 짧은 치마가 기본이었다. 이런 복장은 여학생, 즉 신여성을 규정하는 문화 코드였다.

근대 여학생 교복은 한복이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기능성 의류가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짧은 치마의 유행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한 서구 보이시 스타일의 영향으로 보인다. 양장의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 것과 흐름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당시 여학생들은 통치마를 입거나 치마 주름을 크게 잡는 등 유행을 선도했다. (‘현대패션 100년’, 금기숙 외, 교문사)

서 감독은 “당시의 여학생들의 패션 롤모델은 양장을 한 서양 모델이었다”며 “교복 옷고름과 저고리의 색을 통일한 것도 블라우스 느낌을 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외국인 선교사들이 체육 등의 외부 활동에 편한 통치마(트임이 없음)를 권장해 변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혼 후 아들을 낳으라는 뜻으로 저고리에 파란색 끝동을 달아준 진명여학교 교복처럼 옛 관습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자료 협조=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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