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드라마캐릭터열전]여성을 위한 환상 속의 그대,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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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9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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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로 다져진 몸매만 보면 강인하고 마초적인 남자일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심박수 60~90의 안전지대 밖을 벗어나면 위험에 빠지는, 인공심장에 의존해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다.

또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라는 자부심이 때로 안하무인으로 비쳐지지만, 처음 느껴보는 따뜻한 사랑의 시선에 안절부절 못할 정도로 감정 표현에 서투른 남자일 뿐이다.

자신이 제품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이온 음료처럼 '차도남'인 그의 이미지는 그저 매스컴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나 안락해보이지만 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모델하우스처럼 잘 꾸며 놓은 공간에 어울리는 이미지로 대중의 환상 속에 존재할 뿐이다.

심박수 60~90의 안전지대에서 대중이 만들어 놓은 허상의 이미지로 살아가던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차승원 분)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것은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분)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우연히 들른 주유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그는 환상 속의 그대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 되풀이 되면서 그는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지만 이미 한 물 간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막강한 안티 팬을 거느린 구애정이 '국보소녀' 시절 불렀던 노래 '두근두근'만 들려오면 심박수가 120을 넘어갈 정도로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명의 안전판과도 같은 그의 심박계가 빨간 불과 함께 경고음을 울리는, 그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 누구도 함께 엮이기 싫어할 정도로 민폐 형 이미지가 강한 구애정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최고의 자리에서 거만하게 "나, 독고진이야!"를 남발하는 그에게 짝사랑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수치스러운 감정이다. 한 물 간 생계형 연예인으로 '국민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구애정을 짝사랑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니,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구애정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절대적으로 부정한다. 그럴수록 심장 박동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심박계는 수시로 경고음을 울린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로 결심하고, 구애정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 한껏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고백한 그의 사랑은 구애정의 "난 그 쪽에 관심 없어요!"라는 한 마디로 초전박살 난다. 구름 위를 날아다니던 안하무인 톱스타 독고진이 구애정에 의해 처참하게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

가장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프러포즈 공식이다. 그 공식에 충실했던 독고진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구애정의 마음을 공략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작된 애정 공세는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다. 생계형 연예인으로 '커플 메이킹'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닭싸움을 하는 구애정에게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싸움 닭'을 들먹이며 심술을 부리는가 하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언급하면서 구애정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놓고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구애정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모습은 사랑 앞에 서투른 사춘기 소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만인의 사랑을 받지만, 한 사람의 사랑을 얻지 못해 초조한 그의 모습은 종종 구순기(口脣期)의 유아처럼 구애정이 사다 놓았던 감자에 집착한다. 그에게 감자는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구애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염을 깎아야만 하는 광고 촬영 현장에서 "수염은 내 트레이드마크"라며 깎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던 독고진은 수염을 깎으면 더 멋있을 것 같다는 구애정의 한 마디에 바로 수염을 깎는다.

구애정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조카가 갖고 노는 장난감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대는 그의 모습에서 사춘기 소년의 설렘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서 구애정을 향한 독고진의 애정 공세가 한 없이 엉뚱하면서도 귀여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 소년의 사랑이 일방적인 가슴앓이에 지나지 않듯이, 구애정에 대한 독고진의 감정은 일방적이다. 막무가내 식의 애정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이다.

인공심장이라는 자신의 내밀한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사랑 고백은 절절해 보이면서도 진정성이 담보되지 못한 장난처럼 느껴진다. 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사춘기 소년의 투정 같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일방적인 고백은 자신의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족적인 나르시시즘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 때문에 비호감 연예인으로 낙인찍혀 수시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는 구애정을 위한 그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 독고진은, 그러나 알고 보면 대단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구애정에 의해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그 모습은 대중에게 보이지 않는다.

대중에게 독고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 속의 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고진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라는 한계에 봉착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그는 분명 현실에 실재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근육질 몸매와 귀여운 몸짓, 강인한 인상과 가녀린 감성, 만인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톱스타와 한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 등 공존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불협화음을 환상적인 화음으로 전이시킨 것은 배우 차승원의 힘이 절대적이다.

이런 점에서 '최고의 사랑'의 톱스타 독고진은 배우 차승원이 아니었다면 존재하기 어려운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 속의 대중과 마찬가지로 실제 현실의 대중 역시 허상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그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다. 그리고 그를 좀 더 현실적으로 느끼기 위해 그가 권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소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대중의 환상과 달리 세속적인 존재이다. 세계적인 배우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할리우드 진출 기회나 아이돌 그룹 출신의 스타와의 열애설조차 광고 계약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조건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심지어 그는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수영선수의 메달 획득이 자신의 광고 계약에 미칠 영향 여부를 따질 정도로 자기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이기적인 남자다. 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환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독고진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정형화된, 뻔한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에게서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연상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독고진과 김주원은 겉모습만 다를 뿐 대중의 환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캐릭터들이다.

독고진이 "나, 독고진이야!"와 "영광인 거야!"를 남발하고, 김주원이 "사회 지도층"과 "이게 최선입니까!"를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자신감, 혹은 자만심이 동질의 것임을 알려주는 징표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현실의 추레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환상의 놀이를 즐기고 싶은 대중, 특히 현대 여성의 심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돈도 있고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크고 근육도 있으며 능력까지 갖췄다. 집안이 좋은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사랑할 땐 순진하고 귀여운 면까지 있다. 최고의 자리에서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상처와 유약한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여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들. 현실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원앓이'가 현실이었듯이, '독고진앓이' 역시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을 현실에서 마음껏 즐기는 자세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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