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염정아 “환갑이 돼도 내 색 잃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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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1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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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숙은 내가 하면 많은 색이 많이 나오겠다 싶었던 역
● 촬영장에서는 보호받는 배우, 집에서는 보호하는 엄마
● '1박2일'서 김인숙 털어낸 모습 보여드릴 것

배우 염정아.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배우 염정아.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사실 무서웠다. 어떤 역할을 했느냐에 따라 성격까지 달라진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최근 종영한 MBC '로열패밀리'에서 이태원 양공주촌 출신 신분을 숨기고 JK그룹 둘째 며느리로 들어가 이름 대신 'K'로 불리며 사람 대접 못 받고, 아들 죽인 엄마로 오해받는 김인숙을 연기한 염정아(39)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두려웠다.

한 편으로는 궁금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시청자들에게 '배우 염정아의 증명' '명품 배우 염정아'라는 칭찬을 들었으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아닐까.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김인숙을 벗어났느냐는 질문에도, 명품 배우 칭찬을 받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도 요란스러운 웃음부터 터뜨렸다.

▶"김인숙 벗어났냐고요? 저 엄마에요!"

- 드라마 끝나고 어떻게 지내셨나요.

"아직 너무 바빠요. 큰 애랑 에버랜드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황사 때문에 못 갔어요. 대신 동네 근처에 있는 뽀로로 테마파크에 데리고 갔는데 입이 이만큼 나오더라고요. 황사 때문에 못 간다고 했는데 이해를 못해서 결국 롯데월드 가서 8시까지 놀았어요."

염정아는 2006년 정형외과 전문의 허일 씨와 결혼해 3살 난 딸과 16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다.

-김인숙은 벗어났나요?

"싹 벗어났어요. 결혼 전에는 그러지 못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집에 가면 남편 아이들과의 생활이 있다보니 싹 잊어버리죠. 내 감정에 빠져있을 틈이 없어요. 촬영 중에도 그랬어요. 촬영장에서는 '아 내가 배우구나' 싶다가도 집에 가자마자 아이들이 '엄마~' 달려들면 완전히 역할이 달라지죠. 촬영장에서는 보호받는 입장이고 집에서는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고요."

-3년만의 복귀였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현장은 더 좋아진 점이 없었고요. 하하. 저는 체력이 약해진 것 같아요. 3년이 금방 지났어요. 오래 쉰 것 같아도 바로 얼마 전에 했던 것 같았어요. 대본 리딩 첫 날은 떨렸죠. 큰 회의실에 배우들이 다 모여 있는데 내가 소리를 내서 대사를 읽는다는 게 정말 떨렸어요."

-한국드라마에서 아들 죽인 엄마라는 오해받는 설정은 파격적이었습니다.

"김인숙은 보통 엄마로 이해할 수 없는 엄마였어요. 이해할 수 없어서 감독님과 매 신을 상의하며 찍었고요. 그나마 원작(일본 소설 '인간의 증명')하고 다르게 그려져서 다행이었죠. 대본을 받을 때마다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싶었고 혼자 대사를 읽어볼 때는 감이 안 왔어요. 현장에서 해봐야 느낌이 왔죠. 방송으로 보면 느낌이 또 달랐고요. 한국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감성을 정당하게 보일 수 있게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습니다."

그는 "시놉시스에서 김인숙은 더 나쁜 인물이었다. 시청자들이 인숙을 많이 응원해 줘서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약하게 그려진 것 같다"며 웃었다.

'로열패밀리'에서 고부 간으로 출연한 염정아(왼쪽)와 김영애.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로열패밀리'에서 고부 간으로 출연한 염정아(왼쪽)와 김영애.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 NG 금물! 두 번 하면 그 감정 안나와

-대사에도 존엄, 단죄 같은 일상 생활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하. 저는 절~대 쓰지 않는 단어들이고 그런 말 쓰는 거 싫어해요. 최대한 닭살스럽지 않게 하려고 했어요. 시청자들이 '사극도 아닌데 저 드라마는 왜 그런 단어를 쓰지?'라는 생각 안 들게 하려고 했죠."

-김영애 선생님과 대립하는 역이었습니다. 독대하는 장면도 많았는데요. 부담스럽지 않으셨나요?

"사실 저는 부담 없죠. 제가 최고의 배우인 김영애 선생님께 눌려도 누구나 이해하지 않겠어요? 하하. 마음 편하게 연기했어요. 오히려 눈을 쳐다보면서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선생님 기를 받으며 연기했어요. 게다가 저는 원래 주눅 들지 않는 스타일이거든요. 좀 뻔뻔하죠. 하하"

'로열패밀리'는 염정아를 비롯해 전미선 안내상 전노민 등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김영애는 이들 중 '포스트 김영애'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주저 없이 염정아를 꼽으며 "색깔 있는 배우. 자기한테 맞는 색을 만나면 정말 좋은 배우"라고 칭찬했다.

-마지막 회 '단죄신'을 NG없이 찍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카메라 두 대로 바스트샷 클로즈업샷 찍으면서 한 번에 갔죠. 찍고 나니 다리가 후들후들했어요. 아마 두 번 했으면 쓰러졌을 거예요. 제가 원래 감정신은 한 번 뿐이 못해요. 두 번만 해도 그 감정이 안 나와요. 한 번 뿐이 못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대사 숙지가 완벽하게 되어 있어야 하고 상황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미리 충분히 (연습) 해 놔야 하죠."

대부분 드라마는 그날 촬영해 그날 방송되곤 한다. '로열패밀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은 염정아에게 독이 될 수 있었을 터. 그러나 그는 "다행히 대사를 잘 외운다"며 웃었다.

"'로열패밀리'는 대본 초고가 나오면 배우들에게 보여줬어요. 일단 감부터 잡으라고요. 다른 드라마는 초고 없이 완고가 나오는데 우리는 대본이 어렵다보니 수정이 많아서 초고가 있었어요. 감독님께 전개 방향이 조금이라도 정해지면 바로 알려달라고도 했고요."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갈수록 어려워졌어요. 초반에 구박받을 때는 쉬웠고요. '인간임을 증명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여자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연기가 어려워졌어요. 조니 사건 이후는 가장 어려웠고요. 내가 안 죽였는데 죽인 척 해야 하고….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었죠. 거짓에 거짓이 또 거짓에 거짓이 겹쳐 있는 걸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두 아이의 엄마로 김인숙의 아픔이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요.

"아휴, 대입시켜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 아이들 놓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다만 인숙도 똑같은 인간이니 자식에 대한 마음은 저와 같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그는 "다만 엄마가 되어 엄마 역을 해보니 아가씨 때 했던 엄마 역은 다 가짜였던 것 같다"며 웃었다.

염정아는 김인숙과 한지훈(지성·왼쪽)이 마지막 회 헬기를 타고 실종된 것에 대해 "두 사람은 그렇게 죽었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지성과의 로맨스가 적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염정아는 김인숙과 한지훈(지성·왼쪽)이 마지막 회 헬기를 타고 실종된 것에 대해 "두 사람은 그렇게 죽었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지성과의 로맨스가 적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 "시놉시스 보면 내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보인다"

-결말에서 한지훈 변호사(지성)와 헬기를 타고 실종됐습니다.

"둘이 죽었을 거예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요. 아마 김인숙은 마지막일 수 있다고 예감하면서도 지훈을 태웠을 거예요."

-마지막임을 알면서도 왜 태웠나요?

"운명인거죠. 두 사람은 사랑했으니까요. 그리고 예감이었지 확신은 아니었을 걸요. 죽을 꺼라고 확신했다면 안 태웠겠죠. 하하"

-이 작품을 통해 '배우 염정아의 증명'이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진짜 그런가요? 주변에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그 정도야?' 할 뿐이에요. 저는 그런 거창한 것 말고요. 칭찬 받으면 더 열심히 하고 못 한다고 하면 반항심이 생겨요. 하하. 제가 가진 색이 있잖아요. 시놉시스 보면 나에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정도는 알 것 같아요. 김인숙은 다른 배우들이 했을 때보다 내가 하면 훨씬 더 색이 많이 나오겠다 싶은 역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동탄 신도시로 이사갔는데 회사에서 시놉시스 주면서 하도 읽어보라고 해서 며칠 놔뒀다가 봤다"며 "재미있어서 정말 큰 마음먹고 한 것이다. 잘 해 낼 수 있다는 자신보다 욕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인숙은 선악이 모두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였습니다. 권음미 작가가 염정아 씨 얼굴로 착한 이미지가 나올까 의문이었다고 했는데요.

"제가 가진 외적인 느낌으로는 착해 보이는 게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모습들 중에서 꺼내려고 했어요. 인숙은 착하다기보다 구박을 너무 받으니 불쌍해 보인 것 아닐까요?"

-원작이 일본소설 '인간의 증명'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인숙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애썼는데요.

"증명됐다고 믿고 싶어요. 시청자들 중에 마지막 회를 보고 인숙에게 조금이라도 동화될 수 있었다면 인숙을 인간이라고 인정해 준 것이고 아니면 인정받지 못 한 것이겠죠."

염정아.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염정아.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 "차기작? 일단 아이들과 시간 보낼 것"

-딸도 드라마를 봤나요?
"재방송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얼굴 찡그리며) '엄마 표정이 울 것 같은데… 울 것 같은데…' 하더 니 딸이 울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절대 못 보여주게 했어요. 아직 연기가 뭔지 전혀 모르니까요."

-남편분도 모니터를 해주셨나요?
"열혈 시청자였어요. 힘들어도 어차피 하는 것이니 짜증부리지 말고 잘 해라, 시청자들이 즐겁게 보고 있으니 힘내라고 하더군요. 집에 못 들어가서 미안했는데 정말 고마웠죠. 남편이 평소보다 집에 일찍 들어가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다보니 아이들이 아빠를 더 잘 따르게 됐으니 긍정적인 면도 있었고요."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일단은 다른 생각 안하고 아이들과 지낼 생각이에요.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제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요. '로열 패밀리' 찍으면서 저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저한테 떼를 쓰면 덜 미안했을 텐데 '엄마 영화하고 올게'라고 하면 3살 된 딸이 쿨하게 다녀오라고 해요.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티가 난다고 해요. 태어나서 처음 엄마랑 떨어지다보니 엄마한테 못 받는 사랑을 다른데서 받으려고 하는 건지 어리광 부린다고 하더라고요. 가슴 아팠어요."

드라마가 끝나면 보통 배우들은 화보 광고 촬영 등 소위 '돈 되는 스케줄'에 바쁘다. 반면 염정아는 "아이들과 시간을 너무 못 보내서 다른 스케줄은 웬만하면 잡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22일 방송되는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이 '잠적' 전 마지막 스케줄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라 예능 프로그램 나가도 얌전하게 있었어요. 엄마가 되니 이것도 깨졌죠. '1박2일'을 통해 김인숙을 완전히 털고, 털어낸 모습을 시청자들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제 모습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 말미 염정아는 "환갑이 되어도 내 색을 잃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40대 여배우가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할 수 있어요. 제가 할머니가 되면 더 많이 달라지겠죠. (60대 여배우가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거예요. 외국 영화에서처럼 할머니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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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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