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 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스스로 병역 면제 일군 추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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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0일 07시 00분


“美 시민권 유혹에 흔들릴때도

추신수. [스포츠동아 DB]
추신수. [스포츠동아 DB]
#아마 2006년 12월 3일이었을 것이다. 부산 해운대 근처의 한 식당에서 추신수와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5년 반 가까운 고된 마이너리거 생활을 끝내고 시즌 중반 클리블랜드 이적 후 인상적인 첫 시즌을 보낸 바로 그 해였다.

마침 식당 TV는 도하아시안게임 야구 필리핀전을 중계하고 있었다. 이미 대만, 일본과의 1·2차전에서 패해 금메달이 물 건너 간 상황. 그는 “보기 싫다”며 일부러 외면했다. 부산고 3학년이던 2000년 8월, 추신수는 시애틀과 입단 계약을 맺고 이듬해 태평양을 건넜다.

“햄버거를 너무 많이 먹어 질리다 못해 보기조차 싫다”고 할 정도로 고난 속에서도 메이저리거 꿈을 꾸며 꿋꿋이 버텼고, 2006년 드디어 꿈을 이뤘지만 한 가지 마음속 숙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병역문제였다. 도하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당시 코칭스태프 의견에 따라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는 그 때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대표팀에) 갔다고 하더라도, 금메달을 못 딸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야구가 이렇게 무너지는 건 너무 슬프다. (친구인)대호나 근우라도 금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그 때 물었다. ‘쉬운 길을 고민해 본적이 없냐’고. 그가 말했다.“왜 없겠느냐. 하지만 끝까지 기회를 엿보겠다”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안에 들어있는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 탓에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그토록 원하던 자리에 또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바람대로 친구인 이대호와 정근우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2009년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왼쪽 팔꿈치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던 추신수는 소속팀의 ‘지독한 반대와 간섭’ 아래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병역 혜택도 없어졌다는데 왜 무리해서 가려고 하느냐’는 구단 방침에 마치 투쟁하듯 싸웠고, 결국 “국가가 부르는데 당연히 가야한다”며 함께 했다. 물론 준우승 신화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병역 혜택과는 거리가 있었다.

#능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가 얼마나 숱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는지를, 아니 유혹을 떨치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번뇌했을지를…. 솔직히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한다면 훨씬 쉬운 길을 선택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일찌감치 미국 시민권을 따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최종 순간까지 조국을 버리지 않았고 마지막 남은 단 한번의 기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마침내 병역 혜택을 받았다. 대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터뜨린 연타석 2점 홈런,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터뜨린 1점 아치는 그가 인간적으로 느꼈던 고민과 번뇌를 스스로 날려버린 의미있는 메아리였다.

떳떳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병역 혜택을 받은 추신수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국 시민권을 따지 않고 끝까지 대한민국 사람으로 남아줘 고맙다”는 말과 함께.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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