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강유정] 졸리의, 졸리에 의한, 졸리를 위한 ‘솔트’

동아일보 입력 2010-07-29 15:00수정 2010-07-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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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솔트\'에서 CIA 요원 솔트로 분한 앤젤리나 졸리.
앤젤리나 졸리를 빼고 '솔트'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솔트'의 포스터에는 앤젤리나 졸리, 그녀 단 한 사람만이 서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앤젤리나 졸리에 의한, 앤젤리나 졸리를 위한, 앤젤리나 졸리의 영화가 바로 '솔트'다.

앤젤리나 졸리는 '툼레이더' 이후로 헐리웃의 여전사 이미지를 독점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브란젤리나의 태반이 된 '미스터 앤 미시스 스미스'부터 최근작 '원티드'에 이르기까지 앤젤리나 졸리의 대표적 브랜드 이미지하면 역시 강인한 여전사가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990년대 이후의 헐리웃은 앤젤리나 졸리라는 셀리브리티에게 매우 큰 신세를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앤젤리나 졸리를 제외한 다른 캐스팅을 생각하기도 어렵고 또 다른 여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고 한다면, 그 매력이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CIA 요원 솔트는 자수한 러시아 간첩을 심문하는 도중, 도리어 이중첩자로 지목당하고 쫓기게 된다.

▶ 이중 스파이로 몰린 CIA 요원 솔트

2010년작 '솔트'는 스파이의 누명을 쓴 CIA 요원 애블린 솔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북한에 잠입해 핵무기 정보를 입수하던 애블린은 그만 체포돼 억류되고 만다. 애블린은 공작원이 아닌 정유회사 직원일 뿐이라고 발뺌을 하며 계속되는 고문을 견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구명을 위해 전전긍긍한 애인 덕분에 이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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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세계적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북한은 영화 초반, 애블린의 과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세계의 골칫거리로 강렬하게 각인된다. 영화의 내용으로 보자면야, 아주 작은 도입부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한국인 관객들에게 이 장면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듯 하다.

대부분의 젊은 관객들, 어린 관객들은 '북한'을 동일한 민족의 다른 국가라기보다는 완전히 분리된, 우리와 상관없는 별개의 국가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막이 아닌 귀로 들려오는 모국어의 질감이다.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에게 늑대이자 이리였던 북한은 미디어 이미지를 통해 무자비한 테러 집단으로 묘사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블록버스터 속에서 악당의 코드로 자리 잡은 모국어를 만나는 것은 분명 이상하고도 서글픈 체험임에 분명하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애인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 애블린은 그와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제는 남편이 된 남자와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을 하려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비상 호출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비상 호출은 에블린 솔트의 인생 나침반의 지침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만다.

망명을 신청한 전직 러시아 고위직 군인 출신의 한 남자는 망명의 이유 대신 이상야릇한 러시아의 비밀공작에 대해 늘어놓는다. 살인병기처럼 길들여지고, 러시아를 향한 철저한 충성심으로 세뇌된 아이들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해 미국 곳곳에 숨어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살인병기로 성장한 그들 중 한 명이 곧 미국을 방문한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할 것이며, 그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분쟁과 혼란이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심각한 것은 그가 미리 밝힌 암살범의 이름, 일급 살인 병기의 이름이 바로 애블린 솔트라는 사실이다. CIA의 정예요원이었던 에블린은 순식간에 이중스파이로 의심돼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이 순간부터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졸리는 백 팩에 랜드로버를 신고 달리는 차 위로 몸을 던지고, 굴리고 질주한다.

▶ 시고니 위버와 지나 데이비스를 잇는 '여전사' 졸리의 감동 액션

남편과 연락이 끊긴 에블린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이 곧 남편마저 위협할 것을 직감한다. 그녀는 조직에게 어떤 오해를 남길 수 있을지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 준 남편처럼 그녀 역시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거리로 달려 나간다. CIA의 정예요원이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요원으로 등장하는 에블린은 화려한 무술과 정교한 기술, 그리고 예리한 두뇌 싸움을 통해 CIA의 포위망을 뚫고 달려 나간다. 영화 '솔트'는 이 과정을 매우 다이내믹하고 스피디한 물량 액션으로 쏟아 붓는다.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배신자이자 침입자로 의심받는 에블린 솔트의 추격신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달리는 트럭과 버스 위로 뛰어 내리는 고속도로 자동차 추격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애블린 솔트, 앤젤리나 졸리는 백 팩에 랜드로버를 신고 달리는 차 위로 몸을 던지고, 굴리고 질주한다. 사뭇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추격신에서도 앤젤리나 졸리의 여전사로서의 매력은 120% 충족된다. 사실 차량 추격신이 얼마나 사실적이냐는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멋지게, 아슬아슬하게 연출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 테니 말이다.

물론 몇몇 장면들에서는 만화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처리된 사실성들이 눈에 걸리기는 한다. 가령, 애블린 솔트가 엘리베이터 내부 구조물을 타고 맨 손으로 미끄러져 내려온다거나(그 뜨거운 마찰력을 견디고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애블린 솔트가 가는 곳곳마다 적당한 변장 도구가 마련되어 있는(갈아입을 옷이 필요할 때는 누군가 옷을 벗어 놓고, 머리를 가려야 할 때는 약속이나 한 듯 모자 가게가 있다) 식의 우연 말이다.

사뭇 만화적인 과장법은 러시아와 미국, 양 국가에서 모두 배신자 혹은 이중 스파이로 의심받는 애블린 솔트의 초월성을 보여주지만 정체성 규명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희화화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의 과장법 자체가 '솔트'가 본 시리즈와 동류의 새로운 액션스릴러물이 아니라 앤젤리나 졸리의 이미지에 기댄 여름용 킬링 타임 영화임을 증명해준다. 매력적이고, 신나고, 눈과 귀를 뗄 수 없을 만큼 물량 공세를 시원하게 몰아치지만 새롭거나 낯선 긴장감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애블린 솔트라는 캐릭터 자체일 것이다. 그녀는 과연 적국의 스파이인가 아니면 CIA의 정예요원인가 헷갈릴 만큼 양쪽 모두에 해가 되는 행동들을 거듭한다. 어떤 눈으로 보자면 그녀는 러시아의 비밀 공작원이고 어떤 시각에서 보면 그녀는 충성심 높은 미국의 시민이자 요원이다. 이 의심과 의혹 가운데서 앤젤리나 졸리, 애블린 솔트는 다양한 변신 과정을 거치며 질문을 해소해 나간다.
‘솔트’는 앤젤리나 졸리의 이전 영화들만큼이나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배우 졸리의 매력을 더 깊고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 부족한 파워를 대신한 졸리의 깊어진 눈빛

금발, 흑발, 남장까지 펼쳐지는 애블린 솔트의 변신 장면은 영화 '솔트'가 앤젤리나 졸리의 매력에 어떤 식으로 기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세월의 힘 앞에서 속절없는 졸리 역시 '툼레이더' 때보다는 다소 힘에 부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세월의 흔적은 애블린 솔트의 도주를 파워풀하기보다 간절해 보이도록 유도해준다.

애블린 솔트의 액션이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눈빛이 결국 관객들에게 어떤 울림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솔트'는 앤젤리나 졸리의 이전 영화들만큼이나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배우 졸리의 매력을 더 깊고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럭 위를 종횡무진하는 앤젤리나 졸리를 몇 년 동안이나 더 즐길 수 있을까? 그녀의 등장과 존재만으로 영화의 필연성이 설명되는 작품, '솔트'. 어쩌면 우리는 그녀를 우리 생애의 시간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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