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미 정부가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일부를 중동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0일 오후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기지에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2026.03.10. 뉴시스
미국이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등의 중동 차출 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1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까지 한국에 군사적·비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선 전황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군 전력 차출에 이어 ‘전쟁 지원 청구서’를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한 이란이 유조선 등 해협 통과를 봉쇄하기 위해 기뢰를 설치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본은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것에 대비해 해상자위대 파병 여부를 물밑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될 미군의 유조선 호위 작전에 대한 지원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미국의 지원 요청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군수 지원 혹은 파병은 미국이 주한미군 전력을 중동으로 빼가는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는 인식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주한미군이 자국 필요성에 따라 일부 방공무기를 반출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우리 군 전력 지원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이후 韓파병은 ‘非전투’ 한정… 日은 자위대 투입 검토
[주한미군 무기 잇단 차출] 美 ‘전쟁지원 요청 시나리오’ 고개 안규백,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면담… 정부 “관련 지원요청 없어” 선그어 일각 “호르무즈 호송 요청 가능성” 英-佛 등 자국 군사기지 사용 허가… 日, 정상회담 전 군사지원 요청 대비
호르무즈 해협서 태국 화물선 피격 태국 해군이 11일(현지 시간) 자국 화물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다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공격을 받아 선체에 구멍이 생기는 등(아래 사진) 심각한 손상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태국 해군미국이 주한미군 핵심 전력 차출에 나서면서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한 지원 요청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란이 항전 의지를 이어가면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유럽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서도 비군사적 지원 요청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한국이 동맹 기여와 국제 분쟁 개입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서 실용외교 노선에 새로운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美 동맹 지원 움직임… 한미도 연쇄 고위급 협의
전쟁 초반 개입 자제와 외교적 해결을 주장했던 유럽 국가들은 속속 대미 지원에 나서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서 군사기지 사용을 불허한 영국과 스페인을 향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후 영국을 포함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방어 목적에 한정해 미군에 자국 군사기지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유럽에선 이란이 봉쇄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 작전 지원도 준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전쟁의 가장 치열한 국면이 끝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함선을 호위하는 순수한 방어 임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일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지원 요청에 대비한 내부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6일 일본 정부가 해상자위대 지원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11일 요미우리신문도 “미국이 해상자위대의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호위나 기뢰 제거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호주는 10일 걸프 국가들에 대한 이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조기경보통제기를 배치하고, 공대공미사일을 아랍에미리트(UAE)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미는 잇따라 고위급 협의에 나선 상황이다. 주한미군 전력 차출이 본격화된 가운데,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11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면담을 했다. 이에 앞서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국방부) 정책차관은 미-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2일 안 장관과 통화를 하고 이란 전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마이클 디솜브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차관보도 11∼15일 한국에 머물며 정부 당국자들과 면담할 예정이다. 한미 안보 협력 후속 조치 등이 주로 논의될 예정이지만 미-이란 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테이블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번 주 워싱턴에서 J D 밴스 미국 부통령과의 회담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호르무즈 선박 호위 요청 가능성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 요청은 전황과 전쟁 장기화 여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지원 요청이 현실화되더라도 대이란 관계나 중동에 대한 높은 에너지 자원 의존도 등을 고려할 때 한국에는 비군사적 후방 지원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덴만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 보호나 해상 수송로 안정화 임무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하는 유조선을 호위하기 위해 미 해군 투입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인 2020년 1월 미국과 이란 갈등 고조로 미국의 파병 요청에 따라 청해부대 활동 범위를 아덴만에서 페르시아만까지 넓히는 방식으로 독자 파견을 결정한 전례도 있다.
미국의 지상군 투입 결정으로 전쟁이 전면전 수준으로 비화되고 동맹국에 탄약과 병력 등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은 정부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다만 베트남전 전투 병력 지원을 제외하면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에 대한 한국의 병력 파병은 평화 유지, 재건 등 비전투 분야에 한정됐다.
정부 관계자는 11일 “미국의 지원 요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해도 역외 분쟁에 대한 지원요청을 우리가 꼭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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